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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오늘도 #3B8C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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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폰으로 받는 보수 공연 제안이 들어왔다. 아직 코로나로 조심스러워서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진행하는 행사이니 연주 영상을 찍어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새롭게 찍지 않고 그동안 찍어둔 영상 중에서 적당한 길이를 보내줘도 괜찮으나 퓨전은 안되고 꼭 전통 연주곡이어야 한다고 덧붙여 있었다.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어서 공연비를 물어보니 Uber Eats 150불 크레딧이면 괜찮겠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매우 괜찮지 않다. 이거면 한 두 끼 밥은 먹겠지라는 생각으로 책정한 ‘보수’인지는 모르겠으나 공연 비디오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은 겨우 한두번의 끼니를 보상해주는 정도보다 훨씬 더 품이 든다. 게다가 특정 앱의 크레딧 같은 건 일을 하고 받는 보수로 절대 적절하지 않다. 이 보수가 적당하다고 결정한 이는..
부럽다, 스걸파 타인을 부러워하는 게 만사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아는데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얼마 전 종방한 십 대 댄서 경연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랬다. 나의 십 대는 어땠더라. 솔직하고 호탕한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보며 예전의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나도 참가자들처럼 일찌감치 내 길을 정해서 달렸다. 좋아서 시작했고 내 바람대로 일반고에 진학한 주변 학생들보다 내가 원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 투자를 할 수 있었지만, 나도 저렇게나 내 길을 즐기고 아끼며 걸었던가. 돌아보면 그 길 위에 있어서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보다 위축되고 자책하던 시간이 더 많이 떠오른다. 무대에 오를 기회를 아깝게 놓치고 나면 그 기회가 세상의 전부였던 듯 크게 실망하고 마음이 쭈그러들었다. 얼른 일어나 툭툭 털고 그저 다음 기회..
2021년 11월 벌써 올해도 12월에 들어섰지만, 조심스러운 분위기는 여전하다. 연말 행사가 거의 사라져서 마치 시즌제 직업처럼 스케줄이 조용해졌다. 아직 작은 이벤트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한 해의 큰일들이 거의 지나갔고 지금은 여름 야외 공연이 한창일 때보다는 확실히 여유가 많아졌다. 지난달에는 속해있는 앙상블의 창단 연주회가 있었다. 여기 오고 처음으로 넉넉한 연습 기간을 가지고 준비했다. 연주자 스케줄과 주최 측의 예산 문제로 늘 준비와 연습 시간이 촉박했는데 이번에는 여러 상황이 잘 맞은 덕분에 2주간 집중 연습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서로 다른 문화의 음악과 악기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았다. 본인 음악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함께 모여 서로의 다름을 충분히 수용..
이런들 엇더하며 져런들 엇더하리 여름 공연들로 잠시 좀 열심히 살았다. 지금은 연말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잠깐 쉬는 타이밍이다. 이달 말쯤 휴가 일정도 잡았다. 그동안 바빴던 일을 마무리하고 10월 계획을 세우며 마음이 넉넉하고 또 흐뭇했다. 마음에 똑 드는 휴가 계획도 잡혔고, 이제 휴가를 즐기기 전까지 조금 여유를 부리며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 리스트와 안타깝도록 더딘 진행으로 차마 들여다보지 못했던 개인 프로젝트를 조금씩 챙겨보겠노라 패기 넘치게 다이어리에 적었다. 그래서 요즘 뭘 하며 지내느냐 하면, 다이어리에 적어둔 계획처럼 개인 프로젝트를 하며 책이나 읽고 지내긴커녕, 혹시나 죄다 날아갈지도 모르는 내 데이터를 걱정하며 전전긍긍 지내고 있다. 아, 정말 인생.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10월을 시작하면서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야외 공연 feat. 코로나 시국 다운타운 한 카페 패티오에서 미니 콘서트 형식의 작은 연주회를 개최한다고 연주 섭외가 들어왔다. 녹음이 우거진 한 여름밤, 카페에서 열리는 미니 콘서트. 기분 좋게 오케이를 외쳤고, 이후 장소를 확인하고 나서부터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여기서 연주를 해도 되는 걸까 싶어서 혼자 심란해졌다. 지겹지만 다시 코로나 이야기다. 백신 접종률이 꽤 높은 곳에서 지내고 있고 나 역시 2차 접종까지 마쳤지만, 그래도 여전히 조심해야 하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게 서로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올해 연주가 다시 시작되고서부터 온라인이나 큰 야외무대에서 주로 연주 해왔던 터라 마스크가 문제가 될 거라고 바로 생각하지 못했다. 큰 야외무대에서 연주를 하는 경우는 관객과도 충분히 거리가 떨어져 있..
온라인 공연 feat. 코로나 시국 보통은 음악을 먼저 녹음해요. 으리으리한 장비와 시설이 있으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는 못하고, 집에서 가장 조용한 방에 혼자 들어가 마이크 하나를 끌어안고 해요. 아주 짧으면 십여 분 만에 끝나는 것도 있어요. 근데 가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신경이 곤두서고 예민한 날이 있거든요. 그런 날은 5분짜리 곡을 몇 시간을 녹음해요. 하다가 좀 틀려서 다시 하고, 시김새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하고, 느낌이 별로여서 다시 하고, 앞부분은 좋았는데 뒷부분이 싫어서 또다시 하고… 다시 하는 이유가 수십번을 해도 계속 나와요. 그런 날은 적당히 하고 내려둬야 해요. 그렇다고 그런 예민한 날 녹음한 곡이 소리가 아주 좋냐면 딱히 그것도 아니거든요. 혼자서 그냥 꼬장을 부리는 거지. 내 손가락과 관절은 소중하니 적당히..
2021년 7월 라이브 공연 야외 라이브 공연이 드디어 열렸다.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면서 길었던 락다운도 이제 차츰 풀리는 추세다. 아직 제한이 많긴 하지만 얼마 만에 하는 라이브 공연인지! 같은 장소에서 그 전날 하기로 되어 있던 공연은 갑작스러운 폭우로 아쉽게 취소되는 바람에 내가 속한 그룹의 공연이 올해 첫 라이브 공연이 되었다. 사운드 체크와 리허설을 할 때 까지도 큰 감흥이 없다가, 공연이 시작되고 사람들의 고마운 박수 소리를 들으면서 다른 연주자들과 무대로 들어서니 문득 가슴이 일렁였다. 락다운 기간 동안 완전히 잊고 있었던, 혹은 주제넘게도 무대에 오를 때 느끼는 그 감정이 익숙해져 버려서 그동안 그냥 지나쳐버렸던, 수많은 설렘이 마치 한 번에 몰아치는 듯 했다. 이놈의 팬데믹은 정말이지 일상의 모든 것들을 모조리 한 ..
2021년 6월 중순의 일기 며칠 전 급하게 녹음할 일이 있어서 종일 녹음을 했더니 머리를 감기도 힘들 만큼 손가락과 팔목 근육에 통증이 왔다. 처음 겪는 심한 통증에 조금 놀랐고 별수 없이 연습을 쉬었다. 이제 조금 괜찮은가 했는데 예약해둔 코로나 백신을 맞은 후 팔 근육이 아파서 연습을 좀 더 쉬게 됐다. 연습을 매일매일 그리고 또 매일 했더니 여태 알지 못했던 새로운 재미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그래도 스케줄 없는 때라 손이 아플 때 무리하지 않고 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다가, 스케줄이 다시 생기긴 할까 문득 두려운 마음도 들다가. 정부 지침 발표에 따라 공연이 잡혔다가 취소되고, 또 잡혔다가 전날 갑작스럽게 취소되기를 수없이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스케줄이 잡혀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