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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오늘도 #3B8CCF

쿠폰으로 받는 보수

 

공연 제안이 들어왔다. 아직 코로나로 조심스러워서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진행하는 행사이니 연주 영상을 찍어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새롭게 찍지 않고 그동안 찍어둔 영상 중에서 적당한 길이를 보내줘도 괜찮으나 퓨전은 안되고 꼭 전통 연주곡이어야 한다고 덧붙여 있었다.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어서 공연비를 물어보니 Uber Eats 150불 크레딧이면 괜찮겠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매우 괜찮지 않다. 이거면 한 두 끼 밥은 먹겠지라는 생각으로 책정한 ‘보수’인지는 모르겠으나 공연 비디오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은 겨우 한두번의 끼니를 보상해주는 정도보다 훨씬 더 품이 든다. 게다가 특정 앱의 크레딧 같은 건 일을 하고 받는 보수로 절대 적절하지 않다. 이 보수가 적당하다고 결정한 이는 본인 월급을 어느 마트 크레딧 같은 걸로 받는 게 틀림없다. 혹은 연주자를 직업이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던가. 어느 쪽이든 우스운 일이다. 직업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본인이 주최하는 행사에는 왜 부르려 하는 걸까. 그거도 어떤 장르의 음악인지까지 가려가면서.

아직 저런 보수를 제시하는 곳이 있다니 놀랍고 슬픈 마음이 든다. 날짜가 되면 어쨌든 행사는 진행될 테고 누군가는 그 보수에 연주를 할 거다. 거기서 하는 말처럼, 그리고 여느 우스운 곳에서 한결같이 하는 말처럼, 행사 규모가 작지 않으며 연주 홍보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말에 작은 기대를 걸면서. 그치만 정말 그런 기대를 할까. 어느 곳이든 연주자 부르는 곳이 그렇지 뭐, 무대에 설 기회만 주어진다면, 하는 체념으로 그냥 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어느 쪽이든 슬픈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응하는 연주자가 있어서 아마 다음번에도 비합리적인 보수를 제시하며 행사를 하겠지. 을의 입장인 연주자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애초 배달음식 앱 쿠폰을 보수라며 내미는 코미디를 만들어낸 쪽의 빈곤한 머릿속이, 역시 웃기고 슬프다.

처음엔 무서운 마음도 있었다. 돈 때문에 일을 거절하면 다음번엔 나를 부르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다음번 있을지도 모르는 ‘정말 좋은 행사’에 날 안부르면 어떡하지 하는, 실체없이 피어오르는 두려움에 마음에 들지 않지만 수락하는 경우가 가끔 있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정말 좋은 행사를 하는 곳은 정말 좋은 행사만 한다. 이번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규모가 크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곳에서 갑자기 상황이 여의하여 좋은 행사를 주최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 행사를 만들 줄도 모르거니와 행사 안팎으로 도우려고 나서는 사람도 없는 거 같다. 

애초 고민할 일도 아니었지만 고려해보겠다는 답변을 할 필요도 없이 감사하게도 다른 일정이 잡혔다. 그리고 우버이츠 크레딧으로 받는 보수로는 일을 못 하겠다고 정중히 거절 의사도 전달했다.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는 답변이 없다. 누군가는 그 제안에 정말 응했을까. 괜히 속이 허한데 집에 먹을 게 없다. 이거 참. 우버이츠 크레딧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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