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전히 오늘도 #3B8CCF

부럽다, 스걸파

타인을 부러워하는 게 만사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아는데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얼마 전 종방한 십 대 댄서 경연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랬다. 나의 십 대는 어땠더라. 솔직하고 호탕한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보며 예전의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나도 참가자들처럼 일찌감치 내 길을 정해서 달렸다. 좋아서 시작했고 내 바람대로 일반고에 진학한 주변 학생들보다 내가 원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 투자를 할 수 있었지만, 나도 저렇게나 내 길을 즐기고 아끼며 걸었던가.

돌아보면 그 길 위에 있어서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보다 위축되고 자책하던 시간이 더 많이 떠오른다. 무대에 오를 기회를 아깝게 놓치고 나면 그 기회가 세상의 전부였던 듯 크게 실망하고 마음이 쭈그러들었다. 얼른 일어나 툭툭 털고 그저 다음 기회를 준비하면 될 일을 그렇게 혼자 어려워했다. 누구나 그렇듯 주변의 많은 기대가 오히려 무거워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린 마음에 탐탁지 않아 하는 양육자에게 빠르게 성과를 내보이고 싶은 조급함도 분명 있었다. 돌아보면 많은 게 부족했다. 그중에는 내가 노력할 수 있는 게 있었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도 있었는데 그 모든 게 단순하게 다 내 탓인 것만 같았다. 간혹 좋은 결과를 거머쥐게 되더라도 순수하게 즐거워하지도 못했다. 그저 운이 좋아서 뽑힌 듯한 불안감과 이 정도로는 주변을 만족시키지 못할 거라는 압박감으로 스스로 더 다그치기만 했다. 좀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며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십 대 때의 기억이 모두 불 꺼진 연습실처럼만 남아있다. 분명 환하게 불을 켜고 그 안에서 웃고 기뻐했던 때도 있었을 텐데, 늘 어둑하고 텅 빈 적적한 기억만 남아 있다. 그때의 내가 그런 기억들만 선택해 남겨버렸다.

화제성 1위를 찍을 만큼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은 프로그램이었고 참가자들의 부담도 꽤 컸을 거 같다. 일단 나 같은 멘탈로는 어마어마한 부담을 느꼈을 거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탈락하는 참가자들이 점점 더 감당할 수 없도록 안타까워 할 거 라고 혼자 상상하고서는 그런 부분이 나올 때쯤 그만 봐야겠다 생각했다. 눈앞의 기회를 놓쳤을 때 다음 기회가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아 불안하고 자책하던 때의 우울함이 기억나려 해서 먼저 피하려 했는데, 역시 상상은 나 혼자만의 상상일 뿐. 십 대가 아닌 프로 댄서 프로그램에 나올 테니 다시 불러 달라는 참가자부터, 돌아가서 원래 내 것을 열심히 연습할 수 있는 이제 시간이 생겼다는 참가자, 앞으로도 계속 잘 지켜봐달라는 참가자까지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지 못하는 십 대들의 반응이 담담하고 또 유쾌해서 나까지 온통 마음이 뿌듯했다. 프로그램 포맷은 전혀 아닌데, 참가자들이 진정한 댄스 축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버려서 보는 나까지 즐거웠다. 그리고 이렇게나 똑똑하고 자신 있게 반짝거리는 참가자들이 못 견디게 아름다워서 잔뜩 부러웠다.

어릴 때의 나는 잘 몰랐던 사실이지만, 인생이 참 길다. 넘어지면 거기서 끝인 줄만 알았던 내 길은 내가 계속 걷기를 멈추지 않는 이상 끝없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그래서 내 길을 계속 걷기만 한다면 실패한 일도 그저 내 길을 지나오며 생겼던 에피소드 정도일 뿐 나한테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어차피 모두 흘러갈 테니까. 어쨌든 나는 계속 내 길을 갈 거고, 새로운 일들과 계속 즐겁게 마주하며 걸을 테니. 그러니까 올해도 그저 아끼고 즐기며 내 길을 걸어가야지. 더 나이를 먹어서는 후회가 조금 덜 남도록.

아. 근데 길은 길고, 이 무대가 아니어도 다음 무대가 또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빨리 알아 차려버렸다니. 다시 한번 똑똑하고 반짝이는 그 친구들이 부럽다. 부질없게.

'여전히 오늘도 #3B8CCF'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폰으로 받는 보수  (0) 2022.02.14
2021년 11월  (0) 2021.12.06
이런들 엇더하며 져런들 엇더하리  (0) 2021.10.10
야외 공연 feat. 코로나 시국  (0) 2021.09.15
온라인 공연 feat. 코로나 시국  (0) 2021.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