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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오늘도 #3B8CCF

2021년 6월 중순의 일기

며칠 전 급하게 녹음할 일이 있어서 종일 녹음을 했더니 머리를 감기도 힘들 만큼 손가락과 팔목 근육에 통증이 왔다. 처음 겪는 심한 통증에 조금 놀랐고 별수 없이 연습을 쉬었다. 이제 조금 괜찮은가 했는데 예약해둔 코로나 백신을 맞은 후 팔 근육이 아파서 연습을 좀 더 쉬게 됐다. 연습을 매일매일 그리고 또 매일 했더니 여태 알지 못했던 새로운 재미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그래도 스케줄 없는 때라 손이 아플 때 무리하지 않고 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다가, 스케줄이 다시 생기긴 할까 문득 두려운 마음도 들다가. 

정부 지침 발표에 따라 공연이 잡혔다가 취소되고, 또 잡혔다가 전날 갑작스럽게 취소되기를 수없이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스케줄이 잡혀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취소될 수도 있어. 희망을 품고 준비는 열심히 하되 기대하지는 말자. 내가 있는 곳은 아직 극장 문이 열리지 않았다. 공연계의 기라성 같던 태양의 서커스가 작년에 결국 파산 했을 때, 나와 연관이 없음에도 마음이 절망적인 동시에 겁이 덜컥 났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매일 연습이 되냐고 친구가 물었다. 뭘 위해서 하는 거야? 식당은 열려도 무대는 언제 열릴지 미지수인데. 생활고에 결국 문을 닫아버린 극장도 여러 개 인데. 

친구의 말처럼 뭐를 위해서 연습을 하는지, 언제 무대에 다시 설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 연습을 하는 시간은 연습이라기보다 나 자신을 위한 독주회 같은 느낌이다. 내가 연주하고 내가 듣기. 이 무슨 나 혼자서 북치고 장구 치며 춤까지 추고 심지어 그걸 구경까지 하는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게다가 ‘연주’라기엔 곡의 어느 한 부분을 지겹도록 반복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악기가 계속해서 내 생활의 일과를 채워 주고 있고 그 생활이 하루하루 모여 결국 내 삶을 지탱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실질적으로 돈을 벌어 생활에 보탬이 되는 연주는 아니지만, 음악 연주를 한다는 그 자체가 이런 시기에도 여전히 삶을 위로해주고 있다는 게 어딘가 안심도 된다.

작은 위로와 평온을 위한 셀프 독주회. 참 어수룩하고 너무 천진스럽긴 하지만, 이런 때에 스스로 긍정적일 수 있는 다른 뾰족한 수도 없으니 당분간은 계속 좀 천진 맞아야겠다. 팔이 괜찮아지면 다시 천천히 일과를 시작해야지.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고 있어서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정상화’가 될 거라는 (내 생각에는 순진해 보이는) 전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조용하던 메일 수신함도 이제 조금씩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다. 희망적이냐고 묻는다면, 음. 다시 한번 상기하고 싶다. 희망을 품고 열심히 준비 하되 기대하지 않기.

작년 말 즈음에는 예술인 대부분이 사장되고 있다며 시름하는 소리가 가득 했다. 올해 중순을 넘기는 이 시점에,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싶다가, 그러기가 두렵기도 하다가.  

2021년 6월 중순에 남기는, 늘 이렇기도 저렇기도 한 악기 연주자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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