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일을 비교적 잘하는 편이다. 나 혼자 잘나서 그런 줄로 한동안 착각하다가 문득 정신 차려 보니 교육업에 종사하시는 부모님 덕이었다. 아무튼 쉽게 알려주는 데에 조금 재능이 있는 거 같고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거도 좋아하다 보니 레슨 하는 일은 늘 즐겁다. 물론 어려운 점도 없지 않지만, 꽤 좋아하는 일이어서 내 ‘일’의 범주에서 빼놓을 수 없다. 무척 소중한 일이다.
여기서 처음 레슨을 시작할 때 가장 어려운 건 아무래도 언어였다. 줄을 뜯고 튕긴다는 말을 영어로 뭐라고 전달해야 하는지 난감해서 한참 영어 사전을 찾으며 헤맸다. 외국인을 상대로 하든 한국인을 상대로 하든, 한국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경우에도 쉽지 않았다. 악보도 아예 읽어본 적 없는 음악적 초보인 분에게는 차근차근 알려주면 되는 일이지만, 내가 소개하는 말 한마디나 설명하는 주법 하나로 한국 음악에 대한 인식이나 이미지가 그대로 박힐 수도 있다는 걱정도 마음을 무겁게 했다. 외국인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국악의 고유한 멋을 그대로 알려주고 싶었고, 한국인에게는 향수를 달래며 고국의 문화를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는, 꽤 크고 거창한 바람이 있었다. 괜한 책임감이 들어서 연습곡 하나 고르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레슨 뭐 그냥 하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한국에서 익숙하게 하던 것을 떠나 다시 고민해 봐야 할 일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전공생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점도 고민 지점 중 하나였다. 악기 연주도 어쩔 수 없이 몸이 하는 일이라 근육이 기억할 수 있도록 일정 시간을 들여 연습해야 하는데, 외국의 전통악기(혹은 외국에서 국악기)를 연주한다는 독특한 취미 레슨 정도이다 보니 수강생이 개인적으로 연습에 길게 시간을 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진도를 빼기가 어려워지고, 당연히 실력도 기대만큼 빠르게 늘지는 않았다. 이 수업이 끝나면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될거라는 방향 제시를 해야 하는데 개인 사정이 고르지 않으니 목표 설정이 곤란했다. (게다가 가르치는 사람의 목표는 배우는 사람에 비해 늘 높고 높기 마련이다.)
궁여지책으로 취미반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서 새로운 악기를 어느 수준 정도까지 익힐 수 있는지, 스스로 실험해본 적도 있다. 그 전에 7~8살 즈음의 기억 필름을 뒤져서 아주 처음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의 영상을 떠올려봤다. 분명 나도 처음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차츰 연주가 익숙해졌을까. 역시나 자세히 기억나지 않고 희미했다. 처음 줄을 익히며 신기해하던 것과 어린 마음에 근엄하고 단정한 선생님이 무서워 혼자 눈물을 찔끔 흘리던 기억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생일 선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그냥 굴러다니던 바이올린을 꺼냈다. 하루 1~20분 정도 잠깐씩 연습해보면서 어느 정도 실력이 느는지, 연주 스킬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지 체크했다. 그리고 나는 거기까지였다. 물론 나는 레슨 선생님이 없다는 큰 변명거리가 있었지만, 꾸준히 하지 못해서 내가 원하는 만큼의 스킬을 가질 수 있기는커녕 깽깽대는 소리조차 더 다듬어지지 않았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얼마 못 가서 넘어야 하는 장벽이 찾아온다. 처음 시작했을 때의 호기심과 재미로 악기 줄을 후다닥 익힌 후에는 좀 더 그럴듯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스킬을 익혀야 하는 장벽이 찾아오고, 그 벽을 넘고 나면 또 그다음의 장벽이 기다린다. 내 바이올린 솜씨는 그 첫 번째 장벽도 넘기지 못하고 아직도 깡깡이로 남아 있는데. 느리지만 꾸준히 그 시간을 걸어 쉽지 않았을 장벽을 넘어준 수강생들이 정말 대단하다.
가르치는 건지 내가 배우는 건지 매번 헷갈린다. 정말 소중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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