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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오늘도 #3B8C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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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휴가 나는 이제 뭘 하고 싶은 걸까. 가을이 들어앉은 언덕을 바라보며 한참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라는 말이 썩 어울리지 않았지만, 끝없이 드는 생각은 아무튼 ‘뭘 하고 싶은 걸까’ 였다. 그 자리에 앉아 무료하게 그런 생각이나 하려고 세시간을 운전해서 갔다. 열없고 즐거웠다. 혹시 그럴 수만 있다면 꼭 그러고 싶었던, 내가 바라던 휴가의 모습 그대로였다. 세상에 코로나 라는 게 없던 작년 휴가 이야기다. 나의 첫 휴가이기도 했다. 사실은 조금 쉬어야 했나 하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계속하고 있었다. 그때 나의 멘붕은 어느 순간 갑자기 파박! 하고 온 게 아니라 서서히 옅게, 누수로 물이 새어 스며들듯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쌓였다. 우울의 시간이 모이고 쌓여 세상을 온통 회색으로만 칠해두고 존재를 알아 달라..
직업 예술인 따로 출근을 하지는 않는다. 정해져 있는 출퇴근 시간도 없다. 따라서 점심시간도 자유다. 30분 만에 해치우고 일어나든 두시간을 벌려놓고 앉아 대식사를 하든. 다만 직업 특성상 공연을 해야 하므로 공연 날에는 정해진 장소, 약속된 시간에 나타나야 한다.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주 5일 정도를 출근하는 다른 직업들에 비해 절대 일정하지는 않다. 시기에 따라 주 7일을 모두 나가야 할 수도, 혹은 한 주가 통으로 비어있을 수도 있다. ‘연주자’는 직업일 수 있을까. 일정이 비어 있는 동안 집에서 쉬기도 하지만 바쁘던 사이에 하지 못해 쌓아만 뒀던 계약서와 인보이스 정리도 해야 한다. 일정 조정이나 공연 관련 일들로 연락도 계속해야 하고 회의나 리허설 참석도 하고, 의상을 고르거나 수선 작업도 해둬야..
내가 아는 표현만큼 꼭 그만큼 동요와 민요가 수록된 연습곡 책을 어느 정도 끝낸 후 처음 산조 악보를 받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땐 산조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연습곡이 아닌 정식 연주곡을 배운다는 생각에 잔뜩 들떴었다. 국악곡 악보가 참 드물 때였다. 지방이라 당시에는 근처에 대형서점도 없어서 업계 사람이 아니면 어디서 국악 연주곡 악보를 구매해야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선생님이 가져다주신 산조 악보 프린트물을 받아서 여백을 잘 잘라내고 열 칸 공책에 한 장 한 장 정성껏 풀로 붙이던 기억이 난다. 나의 첫 가야금 악보였다. 풀로 이어붙인 공책이었지만, 어린 마음에 새 악보를 가진 게 꽤 신나는 기억이었는지 노을 진 하늘로 방 안이 봉숭아 물을 들인 듯 붉었던 기억까지 아직 선명하다. 당시 한 장에 오백원 하던 가요나 팝송 악보도 자주..
외국어 빌런 이쯤 되면 마음대로 언어를 술술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정말로. 조만간 있을 연주에서 내가 작곡한 실내악곡을 연주하기로 했다. 최선을 다해 빈둥거리던 어느 날 문득 떠오른 곡이라 곡 쓰는 과정이 어렵지 않았다. 복잡한 곡이 아니어서 합주 연습도 무난하게 지나갔다. 서정적이고 단순한 선율이 반복되어 연주자들도 (어렵지 않아서) 좋아했다. 실제 공연에서 내가 작곡한 곡을 연주하는 건 기분이 또 색다르다. 곧 있을 온라인 연주회를 늘 그랬듯 약간의 걱정과 많은 설렘으로 기다리며 며칠 전 연주팀과 스텝팀 전체 화상 회의도 마쳤다. 스텝팀이 촬영 날 주의해야 하는 사항을 전달해 주고 연주팀도 필요한 장비를 이야기하며 무난히 회의가 진행됐다. 그리고 촬영 순서에 관해 이야기 하다가 회의 참석자 중 아..
돌발상황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고 절실히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 내가 바로 진성의 집순이라는 거다. 걱정과 고민은 많지만 밖을 나가지 못해서 답답하다거나 집에만 있어 우울한 적은 여태껏 단 한 순간도 없었다. 물론 이런 방법으로 알고 싶었던 사실은 아니지만. 집에서만 지내는 올해와 다르게 작년 여름에는 야외공연이 유독 많았다. 일은 한 번에 몰리는 법인가 보다. 아무래도 실내 공연보다 돌발상황이 더 많은 편이니, 야외공연을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습도에 민감한 악기라 혹시 소나기라도 한판 쏟아질까 봐 신경도 쓰이고. 다행히 날씨 운이 좋은지 소나기가 쏟아 내린 적은 없었다. 공연마다 스텝들이 좋아서 음향도 좋았고 여름 축제에 빠질 수 없는 푸드트럭의 맹렬한 그릴 연기도 내 차례는 기가 막히게 피해갔다..
춤추는 임금님 “조경아, ‘조선, 춤추는 시대에서 춤추지 않는 시대로’ (韓國音樂史學報, 서울: 韓國音樂史學會, 2008)” 논문을 참고 ・ 요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한국 전통음악에 어떠한 편견도 없는 사람들이 ‘춤출 수 있을 정도의 신나는 음악’을 가야금 독주 공연으로 부탁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나부터도 전통음악이라 하면 당장 웅장하고도 느릿하게 긴 음을 죽 뽑아내는 취타 음악이나 절절하게 마음을 울리는 판소리, 혹은 빠르게 손을 움직이며 새살거리듯 연주하는 가야금 곡들이 떠오른다. 문득 생각나는 전통음악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신나게’ 춤을 추기에는 모두 어딘가 뻘쭘한 구석이 있다. 나는 일을 거절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처음 그 요청을 들었을 때 무척 난감했다. 전통음악을 적절히 섞은 퓨전 공연을 준비해서 신났던 ..
나를 찾아주세요 연주나 행사 후에 따로 찾아와서 아시안 문화나 새로운 음악에 관심이 많다며 연주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연주 잘 들었다는 고마운 인사나 어떤 곡이 좋았는데 더 설명해 달라는 기분 좋은 대화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간혹 본인의 해박한 아시안 문화 지식을 나한테 늘어놓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대체 왜?!). 넌 아시아에 관심이 많은 거고 난 실제 아시안인데. 이건 뭐 ‘참 잘했어요’ 도장이라도 이마빡에 찍어 줘야 하나 생각하다가 좋은 게 좋은 거다 싶어 웃으며 넘기곤 하지만, 절대 그냥 넘겨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리고 능숙한 발음을 칭찬해 달라는 듯이) 내 악기를 보며 고토나 고쟁이라고 부르는 일이다. 넓은 나무판에 여러 줄이 걸려 있는 장방형 악기..
핑크 똑단발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