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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mence #B5AEF7

2021년 발레 감상 연말 결산

 소생글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 1년 공연을 모아서 연말 결산 글을 올리는 목표를 세웠는데 작년엔 웬만한 공연이 다 취소되는 바람에 유의미한 통계를 내기 어려웠다. 올해는 30회 정도는 감상해서 정산할 만한 횟수를 채웠다. 드디어! 연말결산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1. 올해 가장 좋았던 공연

유니버설발레단 지젤 : 할로윈데이 시즌과 맞물려서 더 분위기 있었던 지젤. 특히 홍향기-이동탁 페어의 지젤은 모든 부분에서 내 예상을 뛰어넘으며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이 무용수들이라면 이렇게 하겠지, 어느 정도 상상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전부 산산조각이 나서 더 의외성 있었다. 심지어 리앙 시후아이의 힐라리온까지, 어디 하나 빠질 게 없는 조합이었다. 살다 보니 힐라리온 캐릭터가 다 안쓰러워지네? 며칠 내내 몇 번 곱씹게 됐던 해석이었다. 페어의 합이 잘 맞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2. 올해 기억에 남는 여성 수석무용수

국립발레단 신승원 : 최근 클래식 주역으로 많이 못 봤었는데 라 바야데르가 예상보다 더 좋았다. 와, 지금껏 캐스팅에서 찾기 어려워서 놓친 공연이 아쉬울 지경. 도도한 감자티로만 기억하던 무용수였는데! 원래 캐릭터 설정이나 안무 쪽에선 감자티를 더 선호하는데도 니키아를 열심히 감상하게 했다. 사연이 넘치는 표정, 길고 아름다운 팔 라인도 인상적이었다. 꽃바구니 춤에서 연기력이 내 취향을 저격했다. 발레 스타즈 갈라에서 발랄한 사타넬라 파드되도 기억에 남는다. 드라마틱한 표현을 잘 살릴 수 있는 레퍼토리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유니버설발레단 손유희 : 개인적으로 호두까기 인형은 UBC의 바이노넨 버전이 훨씬 더 취향인데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좀 단조롭고 짧게 느껴지는 슈가플럼 바리에이션 안무였다. 그 아쉬움을 다 상쇄시킬 만큼 다채로운 표현이었는데, 그 이후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을 봤음에도 여전히 가장 마음에 남는 건 손유희 버전이었다. 앙증맞은 파드샤, 재빠른 피케턴 사이에 집어넣는 점프. 코다에서 짱짱한 훼떼까지. 와, 그래. 이래야 손유희지. 돈키호테-지젤을 거쳐서 점점 노련해지는 기량과 풍부한 표현력도 인상적이고. 최근에 좀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예전 풋풋하던 시절로 돌아와 있었다. 자신만만한 표정까지! 내가 과거에 반한 모습을 다시 찾아서 매우 기뻤다. 그러니까 그 안무는 대체 뭐지? 계속 떠올라서 큰일이다.

3. 올해 기억에 남는 남성 수석무용수

국립발레단 허서명 : 역시 내 예상을 빗나가게 만든 라 바야데르 솔로르. 근데 그 해석이 또 마음에 드네? 금사빠 얼빠 캐릭터인데 그 가벼움이 특유의 두둥실 날아오르는 동작과 잘 어우러져서 더 재미있었다. 이 자리가 원래 김기민 캐스팅이어서 티켓팅이 매우 어려웠고 그 와중에 사이드였던 걸 감안해도 생생한 인상을 주는 표현력. 지금껏 본 솔로르 중 제일 재미있었고, 또 놀라운 건 2회차 땐 연기 노선이 살짝 달라져서 또 다른 공연을 보는 기분이었다는 점이다. 위에 언급한 발레 스타즈 사타넬라에서도 포르르 날아오르며 사랑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다.

유니버설발레단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 돈키호테에서 유들유들하고 쾌활한 바질 연기부터 클라라를 꿈결로 인도하는 호두까기 왕자까지, 깔끔한 기량을 유지하는 무용수. 특히 돈키호테에서 친구들과 동일한 각도를 유지하며 랑베르세로 돌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보고 싶다.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레퍼토리였는데 이런 로미오는 꼭 보고 싶다. 알브레히트로 못 봐서 아쉽고, 내년에 지젤 또 재탕하면 찾아가서 볼 의향이 있다. 언제 봐도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무용수.

4. 올해 가장 많이 관람한 공연

어차피 발레는 공연 기간이 짧아서 다른 장르처럼 소위 말하는 회전문을 많이 돌 수 없지만, 그 와중에도 많이 본 작품이 있다면 다름 아닌 라 바야데르. 나도 내가 그렇게 계속 볼 줄은 몰랐다. 클래식 발레 순위를 매긴다면 10위 바깥에 아슬아슬한 레퍼토리인데도 오랜만에 올라와서인가, 올해 국립발레단 모든 공연을 통틀어서 가장 정돈된 군무를 보여줬기 때문일까, 주역들 기량과 연기가 계속 궁금증을 자아내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내년에 라 바야데르가 없죠? 2년 연속으로 올려야 하는 거 아닌가?

5. 가장 많이 본 무용수

대부분 비슷하게 관람하게 되는 것 같지만, 그 와중에도 많이 봤다고 한다면 역시 국립발레단 드미 솔리스트 심현희. 대체 왜 아직도 드미 솔리스트인가요? 해적 귈나라, 라 바야데르 감자티, 호두까기 인형의 마리를 비롯해 중간중간 자잘한 역할까지 여기저기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언제든지 고른 기량을 뽐내는 무용수. 진심으로 두 단계 승급을 시켜도 될 듯한데. 언제 보러 가도 눈에 들어와서 특히 많이 봤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지, 진짜 많이 세운 건 맞다.

6. 가장 저렴하게 관람한 공연

수원 SK 아트리움의 김용걸 김보람 볼레로. 백신 할인으로 만원의 행복. 그러나 값어치는 그 가격을 훌쩍 넘어섰다. 내가 선호하는 무용수들이 많이 나왔으며 공연 구성도 매우 훌륭했고, 특히 김지영-이승현 페어로 산책을 볼 수 있어서 기뻤다. 현재 소속 발레단 없는 최애들끼리 붙다니!! 아름다운 라인과 풍부한 표현력의 합이 뛰어났다. 만원 정도로 관람했던 공연이 더 있었으나 제일 집중해서 본 공연을 썼다.

7. 새롭게 눈이 간 무용수

과연, 나한테 이런 무용수가 생길 수 있나? 왜냐면 현재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무용수들은 어리면 유치부 때부터 늦어도 코르드 시절부터 꾸준히 지켜봤던 무용수들이다. 내 경우에는 프로 무용수가 아니라 주니어 무용수를 뽑을 수밖에 없다. 유니버설 발레단 주니어 컴퍼니 공연 참여한 학생 중 차이콥스키 파드되를 한 김은서 문정우!  패전트 파드되의 박건희!

8. 올해 좋았던 페어

한나래-김기완. 기품 넘치는 다이아몬드! 낭만적인 차이콥스키 음악과 잘 어울렸다. 러시아 황실의 서늘하면서 화려한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고 생각한다. 서로 눈을 맞추면서 춤에 집중하려는 시도가 기억에 남는다. 이 페어로 호두까기 인형을 보고 싶었고, 예매하는 순간부터 음악과 안무를 떠올리며 시뮬레이션을 했는데…….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못 봤다.

9. 올해 관람했으나 아쉬웠던 공연

국립발레단 주얼스. 위에 언급한 페어 외엔 다 조금씩 아쉬웠다. 연습 시간이 부족한 티가 났고 캐스팅 조합이 너무 겹쳤으며(특히 에메랄드, 다이아몬드 캐스팅이 겹친 건 무슨 생각이지? 토요일 낮 밤 공연이 거의 동일하다고?) 다이아몬드 군무 의상이 상체는 탁한 노란빛이고 스커트 부분은 도드라지는 요상한 핑크빛에 길이도 애매모호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의상을 뜯어고칠 수도 없고! 그래도 또 예매는 했다. 아, 그리고 해적. 재개정을 조금 더 했는데 손을 본 부분이 또 나에게는 불호였다. 메도라 춤 단조로 바꾸니까 더 어색하다. 진짜 신선한 캐스팅 아닌 이상 재관람은 생각 좀.  지금으로는 글쎄. 차라리 라 바야데르를 다시 올려주면 좋겠단 생각뿐이다.

10. 올해 관람하지 못해 아쉬웠던 공연

첫 주 공연이 날아가는 바람에 못 봤던 한나래-김기완 호두까기 인형. M 발레단 돈키호테 김유진-윤별 또는 박소연-윤별. 지방까지 이동할 수 없었는데 어느 페어를 봐도 만족스러웠을 것 같다. 아, 이브닝 갈라 베토벤 교향곡 7번 신승원 김기완 페어도 꼭 보고 싶었는데 취소됐다. 자리도 나름대로 맘에 들었건만. 성남아트센터 한예종 호두까기 인형도 궁금했는데 시간이 애매해서 포기했다. 아, 동아무용 페스티벌도 못 봤다. 

11. 가장 성공한 티켓팅, 가장 실패한 티켓팅

가장 성공한 건 취소된 호두까기 인형 1층 중블 자리. 한나래-김기완 페어. 이 얘기 계속 우려먹긴 싫은데 진짜 슬퍼서 또 한다. 직접 관람한 공연 중에선 광주시립발레단 조주현댄스컴퍼니 와이즈발레단 발레 축제 참가작. 시야가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공연까지 다 좋았다!

가장 실패한 건 김기민이 온다고 홍보해놔서 경쟁률 높아졌는데 결국 날아가 버린 라 바야데르. 심지어 시야까지 일부 날아갔다. 2층 사이드는 시야제한석으로 팔길!

크리스마스의 돈키호테! 오랜만에 보는 무용수들이 반가웠다.

12. 기대보다 더 좋았던 공연

와이즈발레단 유토피아. 놀랍다! 내년 레퍼토리 중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보러 가야지. 또 M발레단 돈키호테. 2막 개정 버전이라서 크게 기대하지 않고 주역들만 구경하러 갔는데 군무까지 활력 넘치고, 무대를 즐기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UBC에서 돈키호테를 이미 감상한 터라 별로면 어떡하지 생각했는데 캐스팅이 압도적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돈키호테를 감상하는 것도 색다르고 괜찮네?

13. 내년에 더 보고 싶은 무용수

유니버설발레단 오타 아리카, 사공다정. 승급도 했으면 좋겠고. 더 굵직한 역할로 만나보고 싶다. 어디서나 만족도 높은 표정, 깔끔한 기량을 보여주는 무용수들이라 애정이 간다. 개인적인 사심이지만 주니어 컴퍼니 김수민 전막에 또 세워줬으면. 그리고 지방 공연에서 광대를 하는 바람에 못 봤던 이승민도 큰 무대에서 좀.

국립발레단 엄진솔. 지난번에도 썼지만 황금신상을 시키지 않은 건 발레단 측의 실수였다. 훌륭한 캐릭터 솔리스트. 마리 남동생 프리츠로 무대를 찢는 존재감이라니! 초등부 저학년 때부터 남달리 끼가 충만했던 무용수인데, 어디에 있어도 눈길이 간다. 캐릭터 역할, 제대로 된 클래식, 단원 안무작 등 어디라도 좋으니 더 많이 보고 싶은 무용수.

국립발레단 김희선. 드미 솔리스트로 승급했는데! 라 바야데르 이후로 못 봤다! 부상인가? 내년에는 돌아와 주세요. 흑흑.

14. 내년 기대작

내년 레퍼토리가 다 올라온 게 아니지만, 일단 국립발레단 고집쟁이 딸. 유니버설발레단 오네긴 또 올려줬으면. 잠미녀도 격하게 원한다. 와이즈 발레단? 혹시 헨젤과 그레텔 예정 없으신가요? 아, 파리오페라 갈라 온다는 소문 있던데! 그럼 일단 가야지! 일단 취소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