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연이 끊어졌지만, 술을 함께 마실 정도는 되었던 사람이 나에게 했던 말이다. “시는 이제 그만 쓰고 에세이를 쓰세요. 대체 시 따위를 왜 쓰는 거예요? 당신은 세상을 향해 할 말이 많잖아요.” 코로나 19가 있기도 한참 전의 일이니 제법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말을 들었을 때 생겼던 깊은 상처도 거의 아물었다.
하필 그때쯤부터 나는 계속 내가 말이 많은 사람이라는 지적을 들어왔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말이 많은 사람인가?’하고 생각해봤고, 부정도 해봤지만 이제 내가 말이 많은 사람이 맞다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말이 많은 것은 장점이라기보다 단점으로 작용하기 쉽다. 어딘가 허술한 인상을 주거나 처신을 잘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곤 한다. 부담스럽게 너무 가깝거나 깊게 접근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독선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기도 한다.
나도 나름 변명을 할 수는 있다. 내가 말이 많이 하게 되는 이유는 상대로 하여금 나와 함께하는 상황에 불편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서거나, 어떤 경우엔 상대를 너무 좋아해서 관심을 끌고 싶고 상대가 외롭지 않게 해주고 싶어서다. 그러나 요즘 내가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러한 나의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말을 줄여야지, 입을 닫고 있어야지, 다짐하곤 한다. 잘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적어도 나는 세상을 향해 할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글이고 말이고 뭐고 아무것도 세상에 내놓고 싶지 않다. 나의 진심은 이거다. 자판을 치는 손가락을 자르고 싶고, 입을 꿰매버리고 싶다. 사람을 살리고 죽이고 하는 이 언어라는 존재가 두렵다. 내가 누군가를 내 언어로 죽였을 것만 같다.
그런데도 글을 왜 자꾸 쓰게 되는가하면, 나를 살리는 글을 만났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마치 다육식물이 자구를 만들어 번식하는 것처럼 언어는 번식하고 있다. 오랜만에 내가 뭐라도 쓰게 만든 책을 소개하고 싶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만 오늘 밤은 어떡하나요』(연정, 발코니 출판사)를 읽기 시작함과 동시에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꿈틀댔는데, 6쇄 기준 74페이지, “내 모든 행동은 정답이었다.”라는 구절을 읽고 더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았다.
큰 기교 부리지 않는 소탈하고 솔직하고 쉬운 글이 마음을 얼마나 위로할 수 있는지. 이 책을 쓴 연정 작가님은 어떻게 이렇게 언어 앞에서 솔직할 수 있는지. 아마 이 글은 작가님 본인을 위로했을 것이고 그 위로가 또 타인을 위로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위로는 관엽식물 같다. 나는 몬스테라를 하나 데리고 있는데, 그 몬스테라에 물을 주고 이파리를 멍하니 만지고 있다가 느끼는 위로와 비슷하다.
나도 나에게 솔직할 수 있다면, 언어 앞에 용기 있게 설 수 있다면, 그 모습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것만큼은 남을 죽이진 않을 것 같아서 쓴다. 나는 쓰기 위해 쓴다. 할 말이 있어서 쓰는 게 아니라. 삶 외의 다른 것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으니까 계속 살아가는 것처럼.
내 언어는 빈약하고, 빈약하기 때문에 솔직할 수 없음을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깡마른 나의 언어를 어떻게 하면 비옥하게 할 수 있을지, 무엇이 어떻게 결핍되어 있는 것인지 탐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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