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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tra #005666

코로나19가 없는 병원

 

 

새벽, 여섯 시가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불쾌하고 희미한 꿈인 줄 알았던 그것이 현실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몸을 웅크리고 신음했다. 평소엔 상상도 못 할 복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응급실에 갈까, 내 발로 걸어 갈 수나 있을까, 구급차라도 불러야 하나, 온갖 생각을 다 들고, 곁에 자고 있는 배우자를 깨울 것인지 말 것인지도 결정할 수가 없었다. 평일이었고, 배우자는 곤히 자고 있었다. 이 일에 대한 조치를 어떻게 하겠다는 결정부터 하고 깨우든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몰래 조심조심 끙끙 앓고 있었더니 고양이들이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주변을 맴돌며 내 손발과 얼굴을 핥아가며 야옹거렸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한 것은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병원들이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느 병원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나처럼 새벽에 갑자기 복통이 찾아온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터넷을 뒤져봐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시간은 지나 9, 동네 병원들이 문을 열고 큰 병원들의 외래진료도 열렸을 때까지 견디다 배우자를 흔들어 깨웠다. 여전히 나는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아픈 상태였다. “나 배가 많이 아파, 어떡하지?”

큰 병원이냐, 동네 병원이냐, 응급실이냐, 외래진료냐……. 우리의 선택은 큰 병원의 응급실이었다. 내 통증이 너무 극심했기 때문에 그때 우리는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아니었을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대학병원 하나가 있어서 그곳의 응급실로 갔다. 나는 우선 폐 사진을 찍어야 했다.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외부에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대기실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폐 사진을 찍고, 또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한 시간 가량을 그렇게 추운 밖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곳에 코로나19 거점 병원이라는 것을 알리는 표지가 벽에 붙어 있었음에도 그게 무슨 뜻인지는 그때는 인식할 수가 없었다.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게 기다리다 곧 내 차례가 되니 입구 가까이 와서 대기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나의 ‘법적동성’ 배우자는 한국에서 “법적보호자”가 아니기 때문에 같이 들어갈 수 없었다.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했다.―법적동성인 배우자는 법적보호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법적보호자라면 코로나19를 퍼뜨릴 리 없다. .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군.응급실이라는 곳으로 들어섰지만, 침대가 없어서 응급실 내부까지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나 정도의 증상으로는 침대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기분만은 내가 곧 죽을 것 같았지만 진짜로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을 정도로 이성을 잃진 않았다. 물론 앉아 있을 힘도 없는 내가 뭘 어쩔 수 있었겠는가? 나는 얌전히 대기실 의자에 앉아 내 이름 같은 것이 불리면 비척비척 다가가 팔을 내주거나 하라는 대로 서 있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오랫동안 응급실 대기 의자에서 추위에 떨고 있었다.

검사들이 끝나고 또 한참을 기다린 후 아까 나를 문진 했던 의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검사결과로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약을 줄 테니 돌아가 먹고 상태를 지켜본 후 여전히 안 좋으면 외래진료로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 이상이 없다니 다행이긴 한데 이렇게나 아픈데요?”라고 물었다. 질문을 정확히 해야 했을까? “이 통증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의사는 복통에는 정말 많은 이유가 있어요. 오른 아래쪽이 아프면 맹장에 염증이 생긴 것이니까 가장 유의해서 살펴보세요.”라는 말을 끝으로 나를 응급실에서 내보냈다.

약을 타서 집에 오는 길에 물을 먹었다가 차 안에서 비닐봉지에 다 토했다. 집에 와서 또 물을 마셨다가 피까지 토하고 거의 혼절 상태로 쓰러져 버렸다.

얼마 시간이 지난 후에 배우자는 나를 끌고 동네의 한 종합병원으로 데려갔다. 입원을 시켜줄만한 곳을 찾은 것일 테다. 낡고 오래된 병원이었는데, 나름 종합병원 꼴을 갖춘 곳이었다. 첫인상이 좋지 않아 배우자는 나를 도로 데리고 나가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내과 간호사들이 나를 보고 바로 응급실로 데려가서 침대를 주어 눕히고 링거를 꽂아 내 통증을 줄여줄 수 있는 조치를 프로답게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을 그만 놓고 말았다.

우리의 요청이 없었는데도 간호사들은 자연스럽게 입원 절차를 밟게 했다. 거기서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워낙 복통이 심해 입원이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정신 차려보니 밤이었고, 나는 링거를 꽂고 병원에 누워 있었다. 복통은 많이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힘이 없고 물도 마시기 힘들었다.

병실은 3인실이었고, 50대 언니와 60대 이모가 있었다. 둘 다 언니라고 부르기에도, 둘 다 할머니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했다. ‘어머니라 부르는 건 훨씬 이상하지 않는가?

60대 이모는 하루 종일 혼자 중얼거리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자면서도 잠꼬대로 중얼중얼, 목소리도 또렷하고 발음은 얼마나 또 좋은지, 이경영보다 딕션이 100배는 좋으셨다. 내용이 있는 그대로 다 들렸다.

50대 언니는 TV 소리를 참 좋아해서 밤 11시까지 TV를 틀어놓고 자기는 9시에 잠들어버리는 사람이었다. 물론 잠들면 코골이가 심해서 숨넘어가는 소리로 들릴 정도라 나를 걱정시켰다.

나는 입원 내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밤낮으로 끼고 있었다.

중얼중얼이모가 내가 입원한 지 33일 차 되는 날에 퇴원을 했다. 아침부터 퇴원을 시켜달라고 보호자(남편)를 병실까지 불러다 얼마나 시끄럽게 구는지. 물론 그 전에도 매일 아침 남편을 병실로 불러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곳은 마치 코로나19가 없는 병원 같았다. 외래환자들까지 자유롭게 병실 구역을 드나들고, 환자의 보호자들뿐만 아니라 병문안 온 이들까지 새벽에도 통제 없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다. 병원을 빙 둘러 다들 담배들도 편하게 피는 곳이니 오죽하겠는가? 창문만 열면 담배연기가 뭉게뭉게 들어오는 곳이었다.

이모가 나간 자리엔 자살생존자 청소년이 울며 들어왔다. 약으로 자살을 하려다 실패했다는 내용의 통화를 친구와 하는 걸 의도치 않게 들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잠깐 헤드폰을 벗고 있을 때였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아서 헤드폰을 얼른 집어 썼다.. 언니는 중얼중얼이모의 빈자리가 컸던 모양인지 자꾸 내게 말을 시키려고 했다. (이모가 있을 땐 내게 몰래 이모가 너무 시끄럽다고 욕했으면서.) 언니는 청소년의 가정 사정과 학교생활 같은 정보를 얻어와 나에게 주입시켰다. 진심으로, 알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언니가 빨리 퇴원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대상포진이 언니에게서 발견되면서 병원은 언니를 퇴원시켜주지 않았다.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 사이에 대상포진이 전염이라도 되면 큰일인데, 싶은 생각이 들며 병원의 조치에 강력하게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복통도 거의 사라졌고,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했는데 아직도 주치의를 만나 검사 결과를 듣지 못한 것도 이상했다. 간호사들을 통해 검사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 하지만 염증수치가 떨어지지 않아서 주치의 선생님께서 퇴원은 아직 이르다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

나는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 병원은 환자들에게 과잉진료를 하고 뜯어먹을 수 있는 대로 뜯어먹는 곳이지만, 입원은 잘 시켜줘서 나이롱환자들이 애용하는 곳이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배우자도 몰랐던 모양이었다.

나는 퇴원을 시켜달라는 시위를 시작했다. 처음엔 소심하게, 주사를 놔주러 오는 간호조무사 선생님들에게, (간호조무사가 주사도 놓느냐 묻는다면 거긴 그랬다, 다들 핏줄을 얼마나 잘 잡는지 대단했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나중에는 대범하게, 눈에 보이는 모든 병원 관계자들에게 퇴원시켜달라고 하소연했다. 다들 주치의 선생님에게 물어본다고 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그 의사양반은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지, .

결국 그 하루가 가기 전에 나는 황급히 퇴원하게 되었다. 퇴원하기 전 간호사 선생님을 통해 초음파 검사인가 뭔가를 또 하겠다고 해서 벌컥 화를 내며 거절했더니 그 의사 놈이 진료는커녕 다른 검사했던 것들 결과도 안 말해주고 그냥 퇴원을 시켜버렸다. 나중에 결과를 들으려면 외래로 와서 돈 내고 들으란다. 자료라도 달랬더니 그것도 자료비를 내야 한다고 해서 먹고 떨어지라는 심정으로 8천 원을 더 내고 자료를 받았다.

퇴원하고 난 며칠 후 동네 다른 내과에 가서 자료를 봐 달랬더니 장염이라고 결론이 났다. 나는 단순 장염에 150만 원을 쏟아부은 것이었다. !

속상해서 재차 물었다. “그러니까, 그 병원에서도 제가 그냥 장염이었다는 것을 알고서도 퇴원 안 시키고 붙들어놓은 거죠?” 의료사기 아니냐 싶으면서도, 내가 아프기는 그만큼 아팠긴 했다 싶으면서도. 150만원이면 할 수 있는 많은 것들, 150만원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니 스트레스로 장염이 도질 것만 같았다. 그 돈으로 셋째 고양이 치과도 가야 하는데!

병원 한 번 가면 아주 빨대를 꽂아서 쪽쪽 다 빨아먹으려고 한다니까.”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엄마가 생각났다. 혹시 나는 그동안 그런 엄마를 불신에 찬 늙은이 취급을 하지 않았던가? 내가 얼마나 세상모르고 건방지게 굴던 애송이였나. 나만 똑똑한 줄 알았지.

돈을 과하게 들이긴 했어도, 위 대장내시경 검사까지 싹 해치우며 건강검진 찐하게 했으니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자.

입원 중 읽은 재밌는 책이 있어서 소개한다.

강이람, 아무튼, 반려병, 제철소, 2020.

링크(알라딘)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4959356

골골거리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웃음을 주는 책이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앓고 있는 중에, 나는 골골거리는 내 몸을 처음으로 긍정한 해로 2020년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