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블레스유” 성공 이후, 여성 출연자들을 전면에 세운 예능 프로그램들이 많이 제작, 방영되고 있다. 식사할 때 틀어놓고 보기엔 예능만큼 좋은 것이 없다. 종류도 분위기도 다른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챙겨보며 울고 웃다 보면 마음을 짓누르던 것들이 조금 가벼워진 기분이 든다. 어느 프로그램이 ‘최애’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하나 다 좋아서 매일이 기다려진다.
지난주 6회째 방송된 “미쓰백”도 그중 하나다. 케이블 채널 MBN에서 방영되고 있는데, 2010년 전후 데뷔하고 활동했던 여자 아이돌 그룹 멤버들에게 경연을 통해 “인생곡”을 가질 수 있게 해 주고 그 곡의 수입을 50% 보장해주는 계약까지 변호사를 통해 맺어주는 프로그램이다. 또한 경연을 통한다고는 하지만 ‘탈락’ 제도는 없다.
개인의 삶과 고통, 트라우마를 방송에 노출하고 그것을 소재로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든다는 것은 분명 윤리적인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이 프로그램을 일종의 다큐멘터리로 보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여성 연예인으로서의 삶은 녹록치 않을 것이다. 그들의 삶과 투쟁, 그리고 그들을 돌보려고 노력하는 다른 여성 연예인들의 활동을 기록한 기록물로서 애정을 가지고 보면 어떨까?
6회에는 오은영 교수를 초빙해서 짧게나마 모두의 정신을 돌보는 시간을 가졌다. 마침 2번째 인생곡의 주제를 ‘가족’으로 정하고 멜로디만 주어진 곡에 출연자들이 스스로 가사를 붙여보는 활동을 시작하면서였다. 오은영 교수는 출연자들에게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을 그려보라고 했다. 출연자들은 각자 그림을 그렸고, 방송으로 노출되는 것에 합의한 부분까지만 짧게 방영하는 것 같았다. (1회에서 백지영은 분명히 밝혔다. ‘어떤 내용이 방송에 나가는 게 싫으면 이야기하라.’고. 시청자로서도 얼마나 믿음직하던지. 타인의 고통을 포르노화해서 소비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른 출연자들이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나인 뮤지스’의 멤버였던 ‘세라’는 색연필 세트를 그러쥐고 멍하니 흰 도화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긴 고민 끝에 세라는 원, 삼각형, 사각형 등의 도형을 검은 색으로 그렸다. 그러다가 세라는 기어코 두 장의 그림을 더 그려냈다.
오은영 교수는 그것은 세라가 가족을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조차 힘들어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힘들었던 원가족(친부모와 이루게 되는 혈연가족)과의 세월은 구체적으로 노출되진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세라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오은영 교수는 그다음으로 세라가 그려낸 두 장의 그림은 결국 그 자리에서 세라가 그 고통을 딛고 한 걸음을 나아간 움직임이라고 했다.
나는 이 ‘미쓰백’의 프로그램의 취지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씩 한 걸음씩 지금 걷기.” 인생곡을 하나씩 과제이자 목표로 주면서 경연을 통해 작은 목표와 큰 목표를 다루고 일상을 굴려나가는 힘을 다시 몸에 붙이게 만드는 것. 그것을 이끌어주는 송은이와 백지영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나에게도 힘이 되는지 모른다.
출연자들의 가족의 형태도 상황도 다 다르다. 그런 점을 나는 이 프로그램이 나름의 최선을 다해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느꼈다.
‘크레용팝’의 ‘소율’은 기혼여성이며 한 아이의 어머니이고, ‘달샤벳’의 ‘수빈’은 편모와 함께 서로 깊이 사랑하며 살고 있다. ‘스텔라’의 ‘가영’은 부모와 동거하고 있지만, ‘와썹’의 ‘나다’, ‘에프터스쿨’의 ‘레이나’는 스스로도 인정(?)하는 것처럼 일찍부터 독립해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왔다. ‘디아크’의 ‘유진’은 독립적이면서도 또한 상대적으로 다른 독립적인(?) 출연자들보다는 어머니와의 정서적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 보인다.
이렇게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다루는 것에 있어, 눈물이 어떻게 없을 수 있을까? 우스갯소리로 ‘제작비를 눈물 닦는 휴지에 다 쓴다.’고 할 정도로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이 우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편이다. 물론 지켜보는 시청자인 나도 펑펑 같이 울며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며 보곤 한다. 그러면서도 먹을 건 또 먹어야 해서 먹던 밥은 맛있게 먹긴 하지만 말이다. 우걱우걱. 먹어야 살지.
6회에 시작된 두 번째 인생곡 경연을 시작하기 전에, 출연자들은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발로 파이팅을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마음을 울렸는지! 한 발을 올려 파이팅을 하려면 몸을 서로 지탱해야만 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죽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가, 스스로 질문할수록 답이 없다. 그러니 모두에게 적용되는 답도 없을 것이다. 이상한 것은, 죽지 않고 기어코 살아남아 한 걸음을 걷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얻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나를 위해 한 일이 없는데, 그저 그 사람은 자신의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그런데도 왜 나는 또 한 걸음을 걸을 수 있게 되는 걸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는 내 그 한 걸음을 보며 자신의 한 걸음을 내딛고 있을까?
△첫번째 인생곡을 가져간 '정유진'의, 인생곡 "투명소녀" 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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