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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tra #005666

생일 축하해

출처 : 지니뮤직

생일 축하해! 4월 8일 영원한 우리의 봄.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시작부터 코끝이 시큰해지네. 걱정하지 마. 슬프거나 아파서 우는 건 아니니까. 그냥, 많이 그립고 보고 싶어서 그래. 너도 우리가 많이 보고 싶지?

올봄에는 꽃들이 한꺼번에 피었어. 진달래랑 개나리랑 매화랑 목련이랑 벚꽃... 모두모두 한꺼번에 펑펑 터졌어. 너는 아마 그걸 보고 나랑 같이 웃었을 것 같아. 한편으로 기후위기에 대해 걱정하면서도, 눈 앞의 아찔한 꽃천지에 너랑 나랑 그렇게 어설프게 웃었을 거야.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려하면서 말이야. 라디오에서 너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플라스틱을 줄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것 같아. 어떻게 하면 될까, 우리 같이 고민해보자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제안했겠지. 그리고 환경보호를 주제로 한 앨범들이나 환경보호 운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음악가들의 음악을 찾아왔을 거야. 같이 들으면서 우린 내일을 잠깐 꿈꿔보았겠지. 평소엔 도무지 생각하기 버거운 '내일'을 말이야. 여전히 내일에 대한 상상은 너무나도 흐릿했겠지만, 우리라서 가능했고, 우리라서 그랬어.

그때의 '내일'은 어쩜 그렇게도 멀게 느껴졌을까? 전혀 보이지 않았어. 네가 달을 그리도 마음껏 사랑했던 건 아마도 달은 눈에 보이기 때문이었나 봐. 그믐 때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달이 거기에 있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라고, 네가 말했었잖아. 그런 달이 우리에게 주던 깊은 안도감에도, 우린 직접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을 조심스럽고도 정성스럽게 두려워하곤 했어. 다름 아니라 너는 아마 달의 뒷면을 보러 떠나버렸나 봐.

나는 그때 '오늘'도 잘 보지 못했던 것 같아. 너는 어땠어? 생각해보면 네가 좋아한다고 했던 글들, 네가 뽑아주었던 사연들에는 오늘을 바라보는 시선이 잘 담겨 있었던 것 같아. 오늘과 오늘의 사람들에 대해서 너는 깊이 마음을 주곤 했더랬지. 네가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너는 그때 나보다 '오늘'을 훨씬 또렷하게 보고 있지 않았을까? 너무 또렷하게 보았던 걸지도 몰라. 너도 나도 빛에 과민했지. 세상은 왜 이렇게 빛이 나는 걸까? 빛나는 것들이 왜 이렇게나 많은 걸까? 차라리 어두웠으면 좋겠어. 그치? 세상은 빛나고 우리는 어두웠어. 자꾸 눈이 시려서 나는 그만 눈을 게슴츠레 감아버렸는데, 너는 펑펑 울면서도 너의 반짝이는 두 눈으로 오늘을 똑바로 응시했던 거야.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거야. 너의 눈은 광원이 아니라 깨끗한 거울이었나봐. 그랬나봐. 그땐 그걸 나는 몰랐네.

나는 여전히 눈을 거의 감고 있어. 살아남으려고 말이야. 맑은 거울인 네 눈도 빛이 났지만, 시퍼런 칼날들도 번쩍번쩍 빛이 나거든. 그 앞에서 목을 내놓지 않기 위해선 차라리 그걸 보지 않는 쪽이 유일한 생존 방식일 수도 있잖아. 너라면 알 거야.

정신과에 가면 그러지, '그러니까, 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에요?'라고. 상관이 있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 걸까? 그리고 상관이 없다는 건 대체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아마 너도 정신과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 같아.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많은 이들이 그래, 대체 너의 죽음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냐고. 말 한마디라도 나눠봤냐고. 나는 웃으면서 너와의 추억을 이야기해. 사실은 마음 깊은 곳에서 억울해하면서 말이야. 내가 대체 왜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지. 사실 나에게 너와의 일들은 누구라도 '인정'할 만큼 소중한 기억들로 남았어. 내가 생각해도, 나는 팬으로서 누릴 것은 다 누린 것 같거든. 너와 나 사이의 추억을 들은 이들은 '아, 그러면 그럴 만 하긴 하네. 그래도 아직까지도 그러는 건 좀 비효율적이지 않아?' 아, 내가 또 들을 귀가 없는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했네. 뭘 그렇게들 인정/불인정하고 싶어 하는 걸까? 진짜 이상하지, 그치. 사람들이야말로 자기들과 정말 상관없는 일에 괜한 관심을 가지면서 말이야. 아, 나도 너에게 그랬나봐. 혹시 나도 너에게 함부로 내 칼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나와 상관 없는 네 일에 괜한 관심을 가지면서 말이야.

아참, 자책하지 않기로 했어. 그런 생각은 그만. 다른 이유는 없어. 네가 내게 그걸 원할 리 없기 때문이고, 너만큼 소중한 내 사람(들)이 내가 그러길 원할 리 없기 때문이야. 

그나저나 어릴 땐 왜 죽은 사람의 생일을 기억하는지 몰랐어. 살아있을 땐 생일을 기억하고 죽고 나서는 몰일(?)을 기억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하면서 할머니 생신을 기억하는 어른들이 신기했어. 하필 우리 할머니 생일은 음력으로 사월초파일이거든. 부처님이랑 같이 손잡고 오셨던 분이야. 그래서 부처님 오신 날에 겸사겸사 할머니 제사상을 차렸던 거야. 재밌지? 아, 이 재밌는 이야기를 너한테 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젠 좀 알 것 같아. 내가 기리고 싶은 것은 너의 죽음이 아닌 너의 삶인가 봐. 물론 경중은 따질 수 없어. 나에게 너의 삶만큼 너의 죽음 역시 중요하고 소중해. 하지만 네가 죽은 날은 어쩐지 떠들썩하게 굴면 약간 정신 나간 사람 같잖아? 물론 내가 정신이 좀 나간 건 맞지만 말이야. 그래도 너의 생일은 내게 좀 더 맘 편히 네 사진을 보고 웃을 수 있는 날인 것 같아. 아휴, 이쁜 것! 하면서 말이야.

여전히 가야 할 곳이 많을 것 같아서 올해도 네 상은 차리지 않아. 언젠가 나중에 네가 우리 집 초대에 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꼭 초대할게. 내 배우자도 너를 정말 사랑하거든. 어쩜 우리 커플은 너를 사랑하는 것마저 딱딱 맞는 걸까? (네가 이 소릴 들으면 '어휴 커퀴! 커플 지옥! 흥!' 그러겠지?) 오늘은 하루 종일 네가 좋아하는 거 마음껏 먹고 네가 좋아하는 일 마음껏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가 되도록 해. 알았지?

사랑해. 종현아.

 

출처 : 위키피디아

추신: 나 이 편지 다 쓸 때까지 안 울고 잘 버텼다? 잘했지? (물론 너는 괜찮다고, 울어도 된다고 말하겠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