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새벽, 특정 악기 키워드를 넣어서 검색하다가 뜻밖의 공연 포스터를 발견했다. 앙상블 동아리 x회 정기공연. 이 익숙한 느낌! 내가 잠시, 정말 아주 잠시 몸 담았던, 졸업반과 졸업생을 위한 앙상블 동아리였다. 꽤 최근인 재작년까지도 공연을 올린 모양이었다. 창단 멤버였으나 날 기억하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확신한다.
내친김에 이전 공연 프로그램도 찾아봤다. 흰 블라우스에 검은 바지를 입은 단원들 사진이 보였다. 단원들 프로필엔 지금까지의 경력과 근황이 담겼다. 문화센터, 학교 방과 후 강사를 비롯해서 여러 앙상블을 겸하는 상태였다.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니, 감탄만이 나왔다. 앙상블 동아리는 이런 사람이나 해야 되는구나!
앞서 밝히자면, 난 동아리와 상극인 사람이다. 초등학교 땐 악보를 볼 줄 안다는 이유로 끌려 들어간 합주부에서 오케스트라용 트라이앵글을 몇 번 치다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당시엔 극도의 집중력과 한 방을 요구하는 타악기와 상성이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니 선생님이 내 의사와 상관없이 맡긴 게 문제였구나 싶다. 중학교 땐 만화부 활동을 했는데 내 작업에만 몰두한 덕분에 2년 연속 상을 탔다. 그 경험이 나쁘지 않아서 고등학교 때도 만화부에 들어갔으나 선배들의 지나친 통제에 지쳐서 개인 플레이 가능한 수예편물 동아리로 옮겼다.
이 학습 효과로 인해 대학에서는 동아리와 상관없는 사람이 됐다. 실기 수업 위주인 과 특성상 학부 동아리 외에는 활동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합창단에 들어간 동기들이 수업 끝나자마자 연습하느라 지친 모습을 보면서 역시 내 선택이 옳았다고 여겼다. 유유자적하게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내가 좋아하는 공연을 보러 다니며, 딱히 더 필요한 게 없다고 느꼈다. 어떤 이는 연장자랍시고 20대 때 경험은 돈 주고도 못 사는데 허투루 다니는 셈이라며 오지랖을 부렸으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빈 원전판과 헨레판 악보를 맘껏 복사하고 비싼 책을 마음껏 신청 도서에 넣고, 빌빌대던 우리 집 컴퓨터와 비교도 안 되는 고사양 컴퓨터를 이용하면서 등록금 뽕을 뽑았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랬던 내가, 졸업을 앞두고 동아리에 들어갔다. 심지어 상상도 한 적 없던 앙상블 동아리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돼서 난 어느새 파트까지 배정받고 첫 연습에 참여하게 됐다. 악장 선배는 일을 많이 추진한 솜씨로 연락망을 만들고, 연습 장소를 구하고, 정기적인 연습 계획을 세웠으며, 분기별 회비 납부 계좌를 개설하고, 연습을 봐주실 교수님을 섭외했으며, 부악장을 선출하고, 동아리 이름을 만들었다. 그 외에도 동아리 운영에 필요한 사항이 순식간에 확정됐다.
애초에 공연을 목표로 개설한 동아리였기에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일정이 연습, 또 연습으로 채워졌다. 졸업생까지 고려하여 학기 중에는 저녁 연습, 방학 중에는 아침 연습이었다. 몇 달 시험삼아 그 스케줄대로 다니는데, 이 활동이 과연 본격적인 학기 중에 가능할까 싶었다. 참고로 그 당시 난 졸업을 한 학기 유예한 상태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동아리에 기웃거리지도 않았겠지! 졸업한 다음에도 이 동아리에 일정을 맞출 수 있을까?
내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이 동아리에서 난 유일한 독주 악기 전공이었다. 그 말인즉슨, 단체 행동에 익숙하지 않았다. 당연히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으며 독주 악기라고 해서 언제나 혼자 무대에 서는 건 아니지만, 대개 혼자만의 시간이 많다.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농담삼아 나누는 악기별 특징이 있다. 악기 특징에 맞춰지는지, 그런 성격이라 그 악기를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전체적인 이미지는 무시할 수 없다. 독주 악기는 대개 혼자 다니며 개인적인 느낌. 학과장님은 좋게 말하면 자기주도적이고 사색적인데 나쁘게 말하면 자기중심적이며 협동심이 부족해서 잘 안 뭉치는 전공이라고 평가했다. 일반적으로 현악기는 날카롭고 신경이 예민한데 고음역 악기일수록 더 민감하게 곤두선 느낌, 금관악기는 강하고 호탕하며 무리지어서 잘 노는 느낌, 타악기는 대범하고 끼가 많은 팔방미인 느낌 등 속설이라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이해가 되는 이야기다.
가까워지면 당연히 의외의 면모를 찾을 수 있고 저마다 다른 개성을 보이기에 편견을 갖고 대하면 안 되겠지만, 일단 내 개인주의적 성향은 부정할 수 없는 면모였다. 그리고 그게 단점은 아니라고 본다. 매우 촘촘한 단체 연습과 파트 연습을 통해서 내가 왜 독주 악기를 선택했는지 깨달았다. 연습이 다 끝난 다음엔 운치 있는 한식집에서 갈비탕을 먹거나 고급 중식당에서 유산슬을 먹으며 대단한 경력을 쌓은 교수님의 일화를 경청하는 일상이 얼마간 이어졌다. 우리 과는 교수님마저 혀를 내두를 만큼 개인적 성향이 강해서 축제 때도 거의 비협조적인 분위기였는데 합주 악기인 관현악 전공들은 다 함께 모여서 으쌰으쌰 뭘 이룩하기를 좋아했다. 예를 들면 겨울 캠프 계획을 짠다거나. 우리 과는 졸업여행도 다들 귀찮아해서 무산되기 직전이었는데!
이미 들어왔으니 첫 공연까지는 무사히 마친 다음에 생각하자! 무대는 좋아하는 편이니까 막상 올라가면 마음이 달라지겠지! 긍정적인 마음으로 애써 추운 겨울 연습을 버텨내던 때 퓨즈가 확 끊어지는 일이 생겼다. 갑작스러운 수술로 인해 며칠간 안정을 취해야 하기에 악장에게 연락을 취했는데 당연히 이런 상황에선 쉬라고 할 줄 알았던 내 예상과 달리 설교를 시작했다. 결석이 잦으면 곤란하지. 교수님께서도 오시는데 개인적 사정으로 자리를 비우면 얼마나 실망하시겠어? 어, 어어. 수술은 어쩔 수 없는 상황 아닌가요? 수술이 성공적이라 후유증은 딱히 없었지만, 당연히 일정 기간 무리하지 않길 권고받았다. 연습을 하기엔 다소 지장이 가는 부위여서 쉬겠다고 했는데, 상습적으로 빠지는 사람 취급당했다. 지각한 적도 없는데! 매우 억울해졌다.
가만, 난 전공 악기가 아니라서 별로 중요한 파트도 못 맡았잖아? 당연히 필요치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내가 없다고 큰일나는 건 아니라고! 그래도 하나라도 빠지지 않는 게 좋긴 하겠지? 특히 전공이 아닌 만큼 연습이 부족하면 뒤처질 게 분명해. 그래도 사람이 병원에 다녀왔다는데! 돈을 받는 일도 아니고, 꽤 많은 돈을 내면서 나가는데! 내가 민폐를 끼친 건가? 어쩌면 내가 불성실한 사람일지도 모르지. 단체생활이니 사적인 일은 고려할 수 없는 걸까? 한국이 더 전체주의적 문화가 강하지. 아, 그래도 당일 통보도 아니고 미리 말했는데! 정상 참작의 범위라는 게 있잖아! 짧은 시간에 여러 마음이 교차했다. 이해해보려고 애썼으나 확 식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또 아프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데, 다음부터는 참아야 하나?
마음이 뜨려니까 일은 연달아 터졌다. 알바 대타를 급히 부탁받았는데 그날이 연습 요일이랑 겹쳐서 끝나자마자 서둘러 나가야 했다. 악장은 예상했던대로 또 언짢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날 회유했다. 꼭 가야 하는 일이야? 다른 사람한테 맡기면 안 돼? 그게 가능했으면 말을 안 했겠죠? 게다가 알바비를 안 받으면 동아리 운영 회비를 충당할 방법이 없는데요. 잠시 대타에도 이 정도 반응이면, 난 무슨 일을 하든지 여기 일정에 매여서 선택해야 되나? 사실 꼭 참여하고 싶으면 내가 먼저 조절했겠지만, 그만한 열정이 남지 않았다.
순간 내 인내심이 사라졌다. 탈주하려면 지금이다! 아직 공연 일정이 잡히지 않았고 신입 멤버를 계속 충당하는 중이며 곡 연습이 초반인 지금! 그 다음 회비도 아직 내지 않은 때 얼른 도망치자. 말이 안 통하는 악장 말고 부악장과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더 참여하기 어렵겠다는 뜻을 전했다. 컨디션도 좋지 않고, 내 연주회 준비를 하게 되면 소홀해질 텐데 더 꼬여서 잡음 생기기 전에 정리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 재주 있는 신입 멤버가 들어오길 바란다는 말에 부악장은 선선히 보내줬다.
이쯤이면 동아리에 왜 들어갔나 싶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귀엽게 생긴 선배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권유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비비드한 컬러로 코디하고 다녀서 눈에 띄는 선배였다. 그렇다. 난 선배의 비주얼에 잠시 홀라당 넘어가서 별로 고민도 하지 않은 채 동아리에 가입한 거였다. 정작 그 선배는 나랑 파트가 달라서 쉬는 시간에만 잠시 대화할 수 있었으며, 회식 때도 고가의 악기를 껴안고 있느라 신경이 곤두서서 더 가까워지기 힘들었다. 불순한 의도(?)는 아니었고, 귀여운 사람에게 약한 탓이다. 이 이후 비슷한 실수는 하지 않는다.
나랑은 맞지 않는 동아리였으나 여러 파트가 모여서 모음곡을 완성했을 때의 희열은 그래도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그렇기에 동아리 공연 소식을 발견했을 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정기공연을 못 올리고 있을 듯한데, 명맥이 끊기지 않고 꾸준히 이어졌으면 좋겠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으니 몸이 좋지 않으면 쉬는 게 당연해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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