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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mence #B5AEF7

새로운 경험 : 통증의학과 치료

 최근 두통이 심해서 잠을 못 잤다. 수면 유도에 도움이 된다는 페퍼민트 아로마 오일, 불면증을 위한 4-7-8 호흡법을 시도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예전에는 그나마 먹혔던 건데 약발이 갈수록 떨어졌다. 베개를 베고 누우면 머리가 더 아프고 불편해서 계속 바꿔봤으나 허사였다. 낮은 베개, 푹신한 솜 베개, 단단하고 납작한 베개, 메밀 베개, 원형 목 베개, 급조한 수건 베개. 모든 베개가 이렇게까지 불편할 일인가? 베개 적응하느라 수면의 질이 떨어졌다. 수건은 특히 골치가 아팠는데 조금만 뒤척이면 둘둘 말아둔 게 풀려서 배겼다. 잘못 자고 일어난 다음날엔 뒷목이 뻐근하고 어깨가 쑤셨다. 며칠 고군분투하고 방향을 바꿔봤다. 이쯤이면 내 몸의 문제가 아닐까? 몸 진단을 받아야 할 타이밍이다.

발레를 오래 본 덕분에 몸에 대한 관찰력이 높은 편이다. 내 몸이 미묘하게 이상한 건 예전부터 알았다. 왼쪽 어깨가 살짝 더 솟았다. 헐렁한 니트를 입으면 오른쪽이 좀 처졌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할 땐 힘을 빼기 어려웠으며 목 위치가 계속 어색했다. 딱 보기에 자세가 틀어져 보이는 몸은 아니기에 마음의 문제로 취급하는 사람이 많았다. 어? 말라서 그런 거 아냐? 살 찌우면 해결되지 않아? 위축된 게 아닐까? 원래 스스로는 단점만 보여.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 자신감을 가져! 자존감을 높여!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곤 했다. 난 단지 객관적이며 통증에 민감할 뿐인데.

예전에 다녔던 발레학원 원장 선생님은 나한테 한쪽 어깨 올라가는 것만 고쳐도 성공이라고 말씀하셨다. 당연히 다른 건 전부 좋다는 뜻이 아니고 몸 중에 어깨가 제일 심각하단 얘기. 인지하고는 있지만, 악기를 오래 해서 균형이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긴장한 상태로 근육을 과도하게 쓰느라 쓸데없는 승모근이 발달한 건 졸업하고 어려운 곡을 건드리지 않으니 많이 없어졌지만 비대칭은 해결이 어려웠다. 하긴 연주자는 자세가 이상해진 사람 천지다. 거북목에, 라운드 숄더는 기본이다. 심하면 터널증후군과 척추측만증까지 생긴다.

특히 현악기 연주자들의 고충이 크다.

결국 통증의학과 병원을 방문했다. 정형외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진료가 가능한 곳이다. 누적된 통증이 단기 치료로 괜찮아질 리가 없으니까 실비 보험 청구 가능한 병원으로! 집에선 큰 문제가 있을 리는 없고 일시적으로 잠 잘못 자서 생기는 현상일 테니 가벼운 맘으로 물리치료나 받고 오라고 했다. 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슬프게도 예상이 맞았다. 질병 의심되니까 엑스레이 찍어보자고 했고, 결과는? 일자목 증후군. 경추 염좌. 딱 보기엔 목이 정상적인 위치에 자리잡았지만 뼈가 꼿꼿해진 상태. 거북목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더 교정이 까다롭단다. 심지어 편평등까지 동반했다. 등은 그나마 커브가 남아서 살리기 쉬운데 목은 C자 커브가 사라졌다며. 왜 쓸데없이 목이 일자인 걸까? 일자 쇄골과 일자 다리는 좋은데! 

편평등 일자목은 자세를 의식적으로 신경 쓰는 필라테스 강사, 무용수, 발레리나 등의 직업군에게도 나타나는 병이라고 한다. 세상에! 내가 발레를 좋아한다지만 발레리나병에 걸리고 싶진 않았는데! 하긴 등이 납작해야 턴에 유리하긴 하다. 위쪽으로 뻗는 동작이 많아서 일자가 되기 쉬운 구조다. 인위적으로 일자로 만들고자 긴장을 한 결과라고! 몸 올바르게 다루면 자세가 좋아지고 건강해지지만 과하게 쓰면 망가지기 쉽다. 그래도 최근 예술 교육은 탄탄한 기본기를 체계적으로 습득하고 아프면 병원 가는 분위기라 다행인가?

받은 치료를 서술하겠다. 우선 체외충격파. 염증 생긴 근육을 풀어주고 충격을 줘서 손상된 조직 재생을 돕는 비수술적 치료다. 진짜 충격적으로 아프다. 가격도 충격이다. 여러가지로 충격적이라서 이름이 충격파인 걸까? 몸에서 폭죽이 연속으로 터지는 감각이다. 아픈 부위를 터뜨린다고나 할까? 치과만큼 불쾌한 소리도 동반한다. 특히 아픈 곳 있으면 말씀하라고 하길래 승모근 끝쪽이 아프다고 했더니 그 부위를 집중적으로 가격한다. 신음 소리가 들리면 더 집요하게 두드려준다. 검색해보니까 꾹 참고 안 아프다고 거짓말 치는 사람도 있다더라. 그 심정 이해된다. 소리 지르거나 우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잘 참는 편이라고 한다. 3회까지는 벽에 붙은 낙상 주의 스티커를 보며 집중을 딴데로 돌리려고 애썼다. 스티커를 삐뚤게 붙였네, 좀 접혔네. 근데 너무 아프면 내가 이 침대에서 떨어지는 게 아닐까? 멀쩡한 다른 부위도 다치면 어쩌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처음엔 뭐 이런 게 있나 싶었는데 5회 이상 받으니까 염증이 줄어들고 적응이 됐는지 몇몇 부위 외엔 덜 아프다.

근육 주사도 맞았다. 마취 없이! 양쪽 목이랑 뒷목이랑 어깨 쪽이랑 날개뼈 근처랑 견갑골 부위랑, 또 어디더라? 열 방 훌쩍 넘어서 기억도 안 난다. 충격파의 충격이 너무 커서 차라리 주사는 양반일 지경이다. 처음엔 따끔하면서 깊게 들어가고, 그 다음엔 약을 넣는데 체감상 10초쯤 지긋하게 누르는 기분이었다. 뾰족한 바늘과 함께 액체가 몸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충격파보다 짧은 시간에 끝내주는 부분에 감사할 따름이다. 주사 맞은 날엔 반창고를 붙여주는데 목욕과 수영이 금지된다. 샤워는 다음 날 가능하다. 아, 음주도 금지! 사람에 따라 어지러울 수도 있는데 젊은 분이라 괜찮으실 것 같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살짝 휘청거렸다. 주사 맞은 날은 소염진통제도 먹었는데, 이틀은 몸살 기운이 돌았다.

물리치료는 개중에 평화로웠다. 따뜻한 핫팩을 허리에 얹고 목 어깨 쪽에 전기 치료와 레이저 치료를 병행한다. 엎드린 자세가 좀 불편했으나 고통은 없었으니 이 정도면 몇 번이고 받을 만하다. 면적이 좁은 목 부위에 기구를 붙이느라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몇 번 떨어뜨리는 고생을 하긴 했지만, 앞서 받은 치료에 비하면 아주 편하다. 짐짓 여유로워져서 병원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었다. 쇼팽 녹턴 2번, 즉흥환상곡, 슈만 트로이메라이. 언제 가도 이 음악은 꼭 나온다. 이 음악들은 너무 흔해서 지루한데! 노곤노곤 나른해지는 효과는 좋다. 아, 어느 날은 갑자기 쇼팽 영웅 폴로네즈가 나오더라. 나도 모르게 들썩거릴 뻔.

 도수치료는 내가 받고 싶다고 요구해서 시작했는데 재밌다. 잘못된 뼈를 새로 맞춰주고 근육을 이완시켜주며 몸을 쓰는 방법을 알려준다.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난 치료였다. 왼쪽 목 근육이 짧아졌고 어깨 뼈가 좀 말린 몸이라 내 원래 목 길이가 덜 보이고 어깨가 좁게 느껴지던 게 개선됐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거울 볼 때마다 달라진 게 다가온다. 목이 쭉 뽑혔다고 해도 될 만큼 솟아올랐고 어깨가 내려가면서 뼈가 펼쳐지니까 원래 어깨 너비가 나와서 안정감이 느껴진다. 확실히 더 당당한 모습이다. 3회 이상 받았을 무렵엔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가 됐다. 

아플 땐 이런 식으로 묵직하다. 지금도 글 쓰다 보니 또 무겁다!!

원장님 진료를 들어갈 때마다 내가 얼마나 호전됐는지 설명해야 한다. 어, 뜬금없는 비유지만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이런 느낌일까? 어, 두통이 사라졌어요. 잠에서 깨지 않았어요. 잠드는 시간이 단축됐습니다. 두 시간 앉아서 집중 가능했어요. 봐요, 머리도 잘랐어요. 충격파와 주사를 피하고자 여러 예시를 들어가며 차도를 알렸다. 다행히도 난 치료가 빠른 케이스라고. 말을 잘 듣고, 스스로의 몸에 대해서 잘 인식하며, 재활 운동도 성심껏 잘 따라한 덕분. 무리한 행동을 하거나 집에 가서 운동을 하지 않으면 도로 돌아온단다. 인간의 몸, 어떻게 구성된 걸까? 진화가 잘못된 거 아닐까? 

머리가 많이 무거워서 뭐가 잘못된 줄 알았는데 이제 가볍다고 했더니 원장 선생님이 크게 리액션을 하셨다. "정말 다행이다. 그럼 큰일이죠! 환자분 머리는 무거울 수가 없어요! 머리가 작으시니 안 무거워야 정상이에요!" 그, 그렇겠네요. 이제 통증 치료보다는 몸을 점검받고 일상을 공유하러 가는 기분이랄까? 최근엔 병원에서 동네 맛집을 추천해주고 왔다. 원장 선생님이 서로 많이 친해진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성격 테스트마다 외향이 높게 나오는 이유를 알았다. 나는 왜 진중하고 조용하지 못할까. 치료받다가 성찰까지 했다.

난 아직 충분히 치료 가능한 몸이란다. "젊으시니까 충분히 고칠 수 있어요! 이 정도는 극복 가능해요! 왜냐! 아직 젊어서! 꾸준히 치료하고 스트레칭하면 한결 나아져요!" 힘차게 격려해주셨다. 젊다고 강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쓰면 쓸수록 고장나는 인간 몸, 그렇다고 가만 놔둬도 또 망가지니 참 번거롭다. 그래도 고칠 수 있다니 희망적이다. 요새 몸 한결 가벼워지고 수평이 맞길래 신나게 돌아다녔더니 날개뼈가 다시 좀 올라오고 멀쩡하던 다리 근육이 뭉쳤다. 아, 쫌! 눈치 챙기자! 골반 틀어진 편 아니고 허리 통증은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일까?

정말 심하게 아플 때 병원에 가면 치료비가 매우 늘어난다. 통증 강도가 높아졌단 건 병이 진행된 지 오래됐단 소리다. 육안으로 봤을 때 몸이 이상한 상태라면 더 심각하다. 가족들은 대수롭잖게 여겼다. 원래 공부하고 일하다 보면 조금씩 다 힘든 법인데 유난스럽게 엄살이 심하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 말들이 쉽게 병원을 못 찾은 원인이었다. 계속 참았더라면? 수술을 요하는 디스크로 진행됐을지도 모르지. 건강엔 좀 유난이어도 된다!

참, 몸이 정렬되고 올바른 수평이 돌아오니까 부정적인 사고가 많이 줄었다. 근육 긴장도만 봐도 평소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인 게 드러난다고 하더라. 차라리 표출하면 괜찮은데 담아두니까 더 악화된 모양이다. 타고난 기질이 무던하지 않은지라 바꾸긴 힘들겠지만, 몸이 덜 아프니까 예전보다 화도 덜 난다. 환경상 스트레스를 확 줄일 수는 없겠지만, 의식적으로 몸에 힘을 빼고 릴렉스하려고 애쓴다. 재활 치료와 테라피가 안배된 느낌. 마음에서 온 병은 분명히 몸으로 드러난다. 진부한 말이지만, 왜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배웠는지 알겠다. 치료를 꾸준히 받을 예정이다. 숙면이 당연해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