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적으로 단정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누군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일부러 제거한 듯 느껴지는 순간. 눈 오는 날의 고요함은 늘 그렇게 느껴집니다. 눈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비해 귀로 들리는 소리가 무엇도 없어서, 가끔 직접 눈을 맞으면서도 ‘눈이 오는 이 풍경이 참 비현실적이다.’ 하고 혼잣말이 나와요.
캐나다에서 국악 공연을 할 때도 늘 비슷한 기분이 들어요. 내가 있는 장소와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연주하고 있는 음악이 어딘가 일치하지 않는 기분이라 항상 비현실적이고 또 신기하게 느껴져요. 여기서 국악 공연을 하다니… 하는 생각에 더욱 신기하고 또 감사하기도 하구요.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다지만, 공연을 준비하고 선보이는 과정이나 마음가짐이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여러 번 반복하며 사람을 쥐어짜고 몰아세우는 연습이 없고, 그래서 같이 많이 맞춰 봐야만 나오는 호흡이 당연히 없는 공연. 그러다 보니 생각했던 만큼 잘 마치지 못해서 스스로 아쉬워하고 있는데 다들 밝게 웃으며 서로 잘했다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며 와, 뭔가 다르다, 고 깊게 느꼈어요. 어떤 것이 더 좋고 나쁜지를 떠나서 모두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참 좋았거든요.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는 것과 별개로 여기 음악에 완전히 동화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한 가지 스타일에 얽매이는 거 같아 나름 고민도 했었지만, 국악을 연주하는 저 스스로가 좋고 이렇게나 멋진 음악이 어떨 땐 가슴이 떨릴 정도로 자랑스럽기도 하니까요. 이게 내 스타일 인 거고, 내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면서 다른 음악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그래서 연주하며 있었던 일이나 느꼈던 감정들을 잘 적어두고 잊지 않아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한 해 동안 정리를 잘했는지는 정말 잘 모르겠네요. 생각하면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나 잊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 수없이 쌓여있는데, 부족하기만 한 글재주로 다 풀지 못해서 아쉽기만 해요.
같이 글을 올리시는 두 분께도 올해의 여정을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진심으로 인사드립니다. 혼자였으면 요만큼도 정리하지 못하고 시간이 그냥 지나갔을 거예요. 저에게는 글감을 고르고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하고 그걸 써서 올리는 시간이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다음 해에도 같이 해주셔서 다시 감사해요.
어려운 일이 너무 많았던 한 해였어요. 일상을 살지 못하고 나니 예술과 문화가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긴 한 걸까 회의가 들기도 했었죠. 하지만 여전히, 예술문화는 인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힘내자는 이야기도 참 조심스럽네요. 우리 어떻게든 버티며 그냥 살아봐요. 그래서 같이 얼굴 보며 웃을 수 있는 때가 꼭 오기를, 바래봅니다.
올 한 해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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