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셋째 고양이는 수다냥이다. 깨어있는 시간에도 쉼 없이 꽁알 꽁알 중얼거리고, 밥 달라, 놀아달라, 관심을 달라, 계속 소리 지른다. 처음에는 소리가 크진 않았다. 길 생활 때 앓은 폐렴 탓일까, 목소리가 마치 작은 까마귀 같다. 쥐어 짜내는 것처럼 나던 까아아, 하던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어느 순간, 득음을 하시고선 이젠 까아아, 어찌나 크게 소릴 지르는지, 귀에 쨍쨍 울린다. 이명이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웃간 소음 문제도 신경 쓰이지만 사실 이웃집들에도 문제는 많다. 밤낮없이 같은 곡만 바이올린을 켜대는 옆집이나 골프라도 치는지 밤중에도 무겁고 작고 딱딱한 공이 떨어지고 굴러다니는 윗집이나 어디선가 흘러드는 담배냄새 집이나 우리 집이나 그렇게 불편하게 서로를 참아가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 사는 아파트구나 싶다.
무해하게 살고 싶었고, 해를 받고 싶지도 않았다. 샴푸 한 방울 짜면서도 죄책감을 느끼고, 음식을 남기는 것이 싫어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환경 오염의 원인이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인간으로서의 내 삶이 어떤 생존을 위협하게 될 것인가 생각했다. 인간종의 일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았고, 내가 버린 플라스틱이 어느 바다새의 목에 박혀 그가 숨이 넘어가는 악몽을 꾸곤 했다.

주변 사람들의 불행도 다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좀 더 잘했으면, 내가 좀 더 잘났으면, 더 노력했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항상 내 탓을 했다.
좋은 일을 하고 세상을 좀 더 나아지게 하려는 일들을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스스로를 공격할 정도로 과한 자책을 하는 것도 일종의 자아비대 증상이라고 한다. "자의식 과잉 예방하고 광명 찾자!" 몇 년 전 까페 '시저지'(https://www.instagram.com/cafe_syzygy/?hl=ko)에서 본 글귀다. 그 글귀를 봤던 즈음부터 나는 변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한 사람은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존재지만, 많은 것을 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샤이니의 종현이 유명을 달리한 지 2년 반 정도가 지났다. 그 일을 내가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일에 내가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쳤던 것은 아닐까, 여전히 생각하곤 한다. 그의 라디오 방송을 하루도 빠짐없이 듣고, 사연을 꾸준히 남기고, 어떻게든 그가 그 한 걸음을 더 딛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2년 반 동안 그 안에서 맴돌았다.

맴돎은 가끔 나선형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 빙빙 맴돌며 거꾸러진 원뿔형으로 넓어진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고, 그것은 돌 하나가 넓은 바위 위에 얹혀 있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걸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알게 된 것 같다.
우리집 첫째 고양이가 '그 날' 일주일 후에 우리에게 왔다. 매우 아파 보이던 작은 고양이가 나에게 마음을 열고 도움을 요청해주기를 기다리며, 추운 겨울에 쪼그려 앉아 "나랑 같이 가자. 따뜻한 곳에서 몸 좀 녹이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자." 속삭였었다. 아이는 자기 발로 천천히 나에게 안겼고, 지금까지 함께 있다.
나는 멀리서 죽어가는 코뿔소를 살릴 수도, 이미 평화를 얻은 종현을 되살릴 수도 없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벌어질 일은 물론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나쁜 일들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 고양이들(그 후 비슷한 상황에서 고양이 둘을 더 구조했다)과 내 배우자를 지키고 돌보는 일은 할 수 있다. 범법 하지 않고 비도덕적이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 분리수거를 잘할 수 있고, 세제를 조금 덜 쓸 수 있다. 육식을 줄이고, 팜유가 들어간 제품을 소비하지 않을 수 있다. 유기동물들을 위해, 후원이 필요한 여성단체들을 위해, 읽힘이 필요한 글들을 위해 돈과 시간과 체력을 쓸 수 있다.
내가 나로 살 수 있다.

나는 최근 창업을 했다. 나는 정당하게 돈을 많이 벌 것이다. 세월을 넘어설 멋진 작품들도 많이 만들 것이다.
친구들에게 격려와 축하를 받았다. 먼 곳의 친구들에게 꽃을 받았고, 화분도 받았다. 가구를 맞추러 이케아에 같이 가 준 친구들도 있었다. 다들 자신의 일처럼 여겨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인지 느끼게 되었다.
헬스 PT 선생님이 내게 어깨가 많이 굽었다고 했다. 등 뒤에서 날개뼈가 닿도록 가슴을 펴곤 한다. 어제 거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내 어깨는 더 이상 작고 둥글지 않다.
'Lutra #00566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의 비타민이 되라 말씀하셨지 (0) | 2020.06.22 |
---|---|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0) | 2020.06.01 |
저 지금 진지하게 낯가리는 중입니다 (0) | 2020.04.19 |
New Me (0) | 2020.03.11 |
전업 시인은 없다 (0) | 2020.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