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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오늘도 #3B8CCF

내가 아는 표현만큼 꼭 그만큼

 

동요와 민요가 수록된 연습곡 책을 어느 정도 끝낸 처음 산조 악보를 받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땐 산조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연습곡이 아닌 정식 연주곡 배운다는 생각에 잔뜩 들떴었다. 국악곡 악보가 드물 때였다. 지방이라 당시에는 근처에 대형서점도 없어서 업계 사람이 아니면 어디서 국악 연주곡 악보를 구매해야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선생님이 가져다주신 산조 악보 프린트물을 받아서 여백을 잘라내고 공책에 정성껏 풀로 붙이던 기억이 난다. 나의 첫 가야금 악보였다. 풀로 이어붙인 공책이었지만, 어린 마음에 악보를 가진 신나는 기억이었는지 노을 하늘로 안이 봉숭아 물을 들인 붉었던 기억까지 아직 선명하다. 

당시 장에 오백원 하던 가요나 팝송 악보도 자주 사서 모았다. 와서 있는 만큼 피아노로 뚱땅거리고 다시 악기로 간단한 멜로디를 연주해보며 놀았다. 어떤 사람들은 국악기로 이런 거도 연주할 있냐고 신기해했고 어떤 사람들은 국악기로 이런 거를 연주하냐고 못마땅해했다. 못마땅해하는 사람은 내가 무얼 어떻게 하던 어디에나 항상 존재하는 법인데 어릴 괜히 기가 죽었다. 그래도 둥당대는게 좋아서, 악보 없이도 좋아하는 노래도 둥당거리고 어른들이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도 곧잘 듣고 와서 혼자 둥당거렸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 장난스럽고도 진지하게 트로트를 연주했는데 어느 분이 오셔서 다시 악기가 하고 싶으시다며 트로트 연주 레슨을 부탁받았다. 덕분에 맥주 맛이 한동안 쏠쏠했다.

학교에서 정식으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악보도 두꺼워졌다. 처음으로 어느 정도 두께가 있는 악보로 레슨을 받으니 연습의 무게도 무겁게 느껴졌다. 어느 연습실에 악보를 깜빡 두고 왔는데 하필 그날 열린 창문으로 비가 거세게 퍼부어서 악보가 찌글찌글 해졌다. 자료로 써야 일이 많아서 결국 책으로 다시 샀다. 산조 악보를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어린 시절을 지나 대형서점에서 국악 악보를 사는 모습이 여러모로 새삼스러웠다. 내가 살던 도시에 하나 있던 서점이었는데 거기에 하나 남아 있었다. 애초 많이 들여오지 않았던 했다.

해외에 나오고부터는 보내주는 악보가 오선보이기만 하면 무난하게 행운이라 생각하게 됐다. 물론 세상에 오선보만 존재하는 아니란 알고 있다. 심지어 한국 전통 기보법만 해도 벌써 여러 가지 인걸. 하지만 음악을 기록하는 방법이 이렇게나 다양하고 많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인간이 보이지 않고 흘러가는 음악을 종이 붙잡아 두고 싶어 했던 걸까. 알지 못했던 새로운 기보법을 보면 여전히 기발하고 신기하게 느껴진다. 가끔 너무 당당하게 본인 문화권의 전통 악보를 보내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한국의 정간보로 다시 기보해서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긴 하지만, 그렇게 새로운 기보 방법을 접할 있는 거니까. 더는 동네에서 악보를 구하지 못해 갸우뚱거리던 어린애가 아니니까.

연주를 하다 보면 여러 가지 기보법으로 쓰인 다양한 악보가 언어 같다고 생각한다. 기보법마다 속성이 있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보법으로 쓰인 음악만의 특징이 있다. 악보에 적혀 있지 않은 음이나 표현법은 음악에서 존재하지 않는 음이라는 , 마치 언어적으로 내가 아는 표현만큼 그만큼 세상이 존재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곡만큼 악보도 차곡차곡 쌓였다. 어떤 간단한 메모 줄로 기록된 음악도 있다. 수많은 악보 더미 속에서 내가 표현해내는 세상은 어느 정도의 크기 일지 궁금하다. 어릴 풀로 붙인 공책 악보를 들고 설레하던, 처음 두께가 있는 악보를 들고 무거워하던 그때보다는 조금 깊고 커졌을까. 가끔 생각하면 스스로 너무 작아 겸손해진다. 음악은 국경이 없다는데. 열린 마음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다가갈 있는 나의 언어가 깊게 늘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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