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보호 글짓기 대회 원고를 담임선생님께 제출했을 때였다. 선생님은 신중한 표정으로 원고지 10매를 넘겨보셨다. 혹시 고쳐야 할 부분이 있나? 왜 뜸을 들이시지? 머릿속으로 글 내용을 복기했다. 딱히 문제될 표현은 없었다.
-혹시 수연이랑 친하니?
정적을 깨고 튀어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수연이라는 친구가 대회에 나가고 싶어하나? 6년간 반대표로 뽑히는 아이들은 거의 비슷했다. 저학년 때 우수한 상을 탄 아이들에게만 기회가 돌아가는 건 불공평한 일이다. 이전에 두각을 드러내지 않은 아이들은 개성적인 글을 써도 묻히기 일쑤였다. 어쩌면 수연이가 그런 아이일지도 몰랐다. 혹시 양보를 원한다면 기꺼이 넘겨줄 예정이었다.
-별로요.
수연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출석 번호가 뚝 떨어져 있었고 키 차이도 꽤 나서 평소에 마주칠 일이 없었다. 수연은 맨 앞자리라서 주로 뒤통수가 기억에 남았다. 찰랑거리는 어깨 길이 단발, 말쑥한 옷차림, 칠판을 똑바로 응시하는 곧은 자세. 미소 띤 인상에 차분하고 성실해 보이는 친구였다.
-그래? 수연이가 글씨를 잘 써. 이런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글 내용도 중요하지만 글씨가 예쁠수록 더 눈에 띄어. 성의껏 쓰면 첫 인상이 좋거든. 수연이한테 베껴 쓰라고 부탁하면 어떨까? 특히 여학생일수록 글씨를 또박또박 쓴다는 기대치가 있는데, 이 글씨는 깔끔하게 잘 쓴 편이 아니잖니? 안 친하면 선생님이 따로 시켜볼게.
또 예상 밖의 이야기였다. 글씨를 더 정성껏 쓰라는 지적을 종종 받긴 했지만, 아예 남의 글씨로 제출하라는 소리는 처음이었다. 당연히 악필보다는 명필이 유리하겠지만, 글씨 때문에 큰 손해를 볼 리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예상하기에는 아주 높은 상을 못 탄 이유가 글씨체 탓이란다. 세상에!

-글 진짜 잘 썼더라. 상 탔으면 좋겠다!
이틀 뒤 아침, 수연은 생글생글 웃으며 원고지를 내밀었다. 선생님 말씀대로 수연은 딱 정석으로 깨끗한 글씨체를 가졌다. 국어 쓰기 교과서에 바른 글씨 예시로 나올 법한 정자체. 과연, 바르고 단정해서 어른들이 좋아할 만했다. 어린이 글씨인 나랑 확실히 차이가 났다.
-어, 고마워. 뻔한 내용인데 뭐.
-난 글을 못 써서 부럽더라.
-대신 글씨를 잘 쓰잖아.
-너 글씨도 괜찮던데? 선생님이 기대치가 높아서 그러시는 거야. 또 나가면 언제든지 말해.
수려한 글씨체처럼 곱디고운 말씨가 돋보였다. 깨끗한 흰 블라우스에 빳빳한 남색 스커트, 반질반질한 메리제인 구두.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단정함을 차곡차곡 모아서 만든 듯한 아이였다.
어쨌든 난 괜찮은 상을 탔다. 그 이후엔 논설문으로 지역 대회를 나갔고, 교육청 동시 대회를 거쳐서 급기야 더 커다란 독후감 대회 대표가 됐다.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나간 대회에서 난 처음으로 고배를 마셨는데,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아파트에서 짖어서 시골로 쫓겨난 강아지가 새 환경을 못 받아들이고 거부하다가 순응해간다는 동화를 읽고 써야 했다. 소형견을 모를 만큼 무지한 할아버지는 강아지란 자고로 도둑을 잘 지키면 되는데 너무 작아서 맘에 차지 않아서 혀를 찬다. 심지어 먹다 남은 밥을 준도. 안락한 아파트 안에서 야들야들한 소시지와 달콤한 우유(사람 음식을 먹인 건가?)를 먹던 강아지는 마당에 묶인 신세를 한탄한다.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포시럽게 키우는 게 아니라며 강아지를 이불 속에서 재우는 도시 풍토를 비판한다.
마구 짖어대며 항의하던 때 동네를 돌아다니던 누렁이를 만나고 어디든지 쏘다니는 시골 개의 삶이 더 자유롭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파트에서 사람들과 호화롭게 살던 시절을 그리워하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도시랑 다른 풍경을 살펴본다. 시골 법대로 사는 게 편하다는 누렁이 말을 긍정하며 결국 음식 찌꺼기에 입을 대는 결말이다. 이미 저학년 때 집에 있던 동화집에서 읽은 단편이었다. 처음에도 불쾌했는데 딱 떼어놓고 곱씹으니 따뜻한 방에서 호강(?)하는 동물을 부정적으로 보는 작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필 동물 학대 동화를 선정한 심사위원은 무슨 의도일까? 분수에 맞게 살라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고,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란 격언에 빗대야 하나? 도시는 이치에 어긋나며 시골은 순박하고 자연스럽다고 써야 하나?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도시 사람의 잘못이라면 끝까지 책임질 수 없는 생명을 데려온 점이다!
-그래도 수고 많았다. 잘 모르는 동화 나왔어?
-그건 아닌데요.
각 지역마다 잘 쓴다고 뽑힌 아이들이 모인 곳이니까, 상을 못 탈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부르셨는데 실망감이 역력한 표정이셨다. 나도 요란하게 나간 만큼 가작 입선 정도는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멋대로 쓴 시점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역시 글씨를 연습시킬 걸 그랬구나. 큰 대회 나갈 줄 알았으면 미리 교정시켰어야 했어. 중학교 가서도 백일장 나갈 텐데, 펜글씨 교본 책을 사서 찬찬히 따라 쓰는 게 어떠니?
으악! 선생님은 내 수상 실패의 원인을 글씨체에서 찾고 계셨다. 내가 글씨 쓰기 대회에 나간 것도 아닌데! 차라리 멀끔하지 않은 글씨체 때문이라고 짐작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그 동화 내용으로는 훌륭한 독후감을 쓸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 설명하자니 번거로웠다.
글씨 담당이 될 줄 알았던 수연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전근으로 전학을 갔고, 난 원래 글씨체대로 글을 썼다. 내 글씨체로도 그럭저럭 크고 작은 상을 계속 타고, 교지에도 실렸다. 글씨체 효과로 큰 상을 타는 게 기쁜 일인가? 선생님 말대로 내 글씨체가 반듯하지 않다면 더 대단한 일 아닐까! 내용만으로 상을 탔단 이야기니까. 당시 난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오존층을 뚫고 올라갈 지경이라서 글씨체가 부끄럽지 않았다.


자신감의 원천엔 남자아이들이 있었다. 내 글씨는 그나마 일정하기라도 했지, 걔네들은 줄에 안 맞게 삐뚤빼뚤하고 크기도 들쑥날쑥했다. 남학생이 글씨를 멋지게 잘 써야 논설문 주장에 힘이 실린다는 비유는 듣지 않았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남학생이었으면 안 들어도 될 지적이었단 소리다.
선생님의 발언은 명백한 성차별이었다. 그렇지만, 진심 담긴 조언이었다는 사실이 날 괴롭게 했다. 선생님은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빌려주셨고, 애정 어린 목소리로 별명을 불렀다. 귀여운 덜렁이, 우리 깜찍한 수다쟁이. 더 산만하고 말썽 많은 남자아이에게는 붙여지지 않은 별칭이다. 선생님은 학교에 찾아온 엄마에게도 약간의 칭찬과 함께 염려를 끼얹었다.
-아직 초등학생이니까 개성 강한 아이로 인정받지만, 좀 침착해질 필요가 있어요. 호기심 많은 재주꾼인데 얌전하지 않아서 걱정이에요. 공작을 시키면 손이 어찌나 빠른지 후다닥 완성하고, 모자이크도 크게 찢어서 듬성듬성 붙이고. 보통 여학생들은 예술성 좀 떨어져도 끝까지 꼼꼼하게 만들거든요. 딴 친구들 작품 참고하게 시키면 또 저쪽 가서 남자애들이랑 티격태격하고. 생김새랑 달리 터프하고 와일드해요. 그냥 보고만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데, 그 왈가닥 기질이 좀 줄어들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거예요. 그래도 주장 확실하고 당차서 한마디도 안 지고 덩치가 큰 남자애들한테도 맞서니 재밌어요. 고집은 얼마나 센지, 글씨체 하나를 안 고치네요. 하하.
엄마는 최근까지도 그 일을 회상한다. 손으로 글씨를 쓸 일이 줄어들어서 다행이라고도 덧붙인다. 엄마도 내 글씨에 불만을 가졌던 사람 중 하나다. 글씨는 마음의 창이라나? 글씨체를 교정하지 않은 건 고집 때문이 아니다. 문장이 계속 떠오르면 글씨체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중고생 땐 다이어리 꾸미기와 편지 주고받기가 꾸준히 유행을 탔는데, 아기자기한 활동은 내 흥미와 거리가 멀어서 합류하지 않았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연스레 다듬어진 내 글씨체가 의외로 빛을 발했다. 친구들은 마치 컴퓨터 손 글씨 폰트처럼 동글동글하니 귀엽다며 편지지를 채워달라고 했다. 알록달록하게 꾸미기에는 너무 세련된 글씨보다는 친근한 모양새가 제격이었다.
여전히 글을 쓰는 일을 즐기지만 글씨를 쓰는 행위에는 흥미가 없다. 친구들이 캘리그래피, POP 글씨 등에 빠졌을 때도 관심이 가지 않았다. 글씨를 잘 쓰는 건 재능 중 하나다. 다른 사람이 보는 글은 정갈할수록 더 돋보인다는 말도 이해는 간다. 더 가지런하게 가꿨으면 준수한 글씨체가 됐을지도 모르지만, 내게 부족한 재능을 찾아 헤매고 비하하기보단 할 수 있는 일에 매진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초등학교 때 노트를 발견했는데 글씨가 내 기억보다 더 멀쩡했던 게 지금 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됐다. 급한 성격 탓에 자음과 모음이 조금 뭉개졌지만 발랄한 개성이 느껴진다. 가독성도 그럭저럭 좋은 편이다. 내 글씨체가 뭐 어때서! 이만하면 됐지! 전혀 기죽지 않고 내 맘대로 쓰고 싶은 글을 썼던 그 시절의 날 칭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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