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종이가 보이면 그림을 그리는 아이였다. 그 사실을 아는 친척들은 생일이나 어린이날이면 미술 도구를 선물로 주곤 했다. 그중에서도 채색 도구를 선호했다. 크레파스는 가능한 많은 색상이 들어갈수록 설렜다. 몽롱한 색채의 파스텔도 매력적이었다. 물을 뿌리면 수채화처럼 변하는 색연필, 돌돌 풀어서 쓰는 색연필, 연필처럼 생겼지만 좀 더 부드러운 색연필은 저마다 질감이 달랐다. 물감으로 영어 색상 명칭을 배웠다.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 처음으로 주제가 정해진 그림을 그렸다. 첫 주제는 봄이었다. 자신만만하게 그릴 수 있었다. 자연물 묘사는 내 특기 중 하나였다. 노란 나비가 남실거리면서 고운 색채의 꽃에 살포시 앉고, 자그마한 연둣빛 새순들이 보드라운 흙에서 조심스레 머리를 내민다. 연한 색들로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그렸다. 내 느낌 그대로 그린 그 그림은 이 주의 그림으로 선정되어서 한동안 벽에 걸렸다.
하지만, 다음 주제부터 나와 어긋났다. 고래가 무엇을 먹었을까요? 나는 책, 과자, 수영복, 신발, 종이컵 등을 그렸다. 선생님은 내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다시 그리라고 했다. 물고기를 그리는 시간이야! 처음부터 바다를 그리라고 하지, 왜 추상적인 주제를 줬을까? 조금 더 자란 아이라면 커다란 고래니까 물건이 들어갔을 수도 있다고 우겼을지도 모른다. 청소년쯤 됐으면 환경 문제를 빗댄 그림이라고 했을 수도 있겠다. 해변에 온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라고. 그렇지만, 어린 난 선생님의 지적에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의 주제는 코끼리였다. 선생님이 이번에도 다시 그려오라고 했다. 그 이유인즉슨, 아주 커다란 코끼리의 코에 놀란 여자아이가 뒷걸음질하는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땋은 머리를 위로 바짝 올라간 묘사가 아직도 기억난다. 뭐야, 코끼리가 안 나왔잖아! 다시 그려! 그래서 아기 코끼리를 그렸다. 또 퇴짜였다. 스케치북 전체에 코끼리를 채우고, 색도 제대로 칠하라고 했다. 에메랄드색 코끼리가 뭐 어때서. 여백 없이 꽉 채운 회청색 코끼리를 그린 다음에야 그림이 통과됐다. 그 이후로 내가 그린 그림은 선생님들의 시선과 핀트가 맞지 않았다. 사과를 금색으로 칠하거나 바위를 풀색으로 칠하면 다시 그리라고 했다. (그리스 신화엔 황금 사과도 나오는데! 이끼 낀 바위일 수도 있지! 실제로 없더라도 뭐 어때!) 유난스러운 사립 유치원이었는데 융통성이 너무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미술 시간. 엄마는 내게 부담을 줬다. 딴 애들처럼 평범하게 그리되 걔네보단 잘 그려야 한다는 거였다. 화려하지만 심플한 디자인을 부탁하는 클라이언트도 아니고! 다행히 선생님은 내 그림이 기가 막힌다며 칭찬했다. 속눈썹이나 옷 무늬까지 자세히 그린 게 대단하다면서. 친구들도 내 그림은 금방 알아봤다. 색이 제일 많은 걸 찾으면 된단다.
친구들이 미술 대회에 날 추천한 덕분에 큰 상을 탔다. 그 상을 시작으로 일본 대회까지 나가서 상을 받아왔다. 즐거운 경험은 잠시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그림에 법칙을 정해줬다. 색을 몇 가지만 써야 수준 높고 세련된 그림이 나온다고 했다. 중심인물 얼굴은 큼직하게, 풍경화 아닌 이상 나무나 벤치 같은 건 멀리 그려야 원근법에 맞다고 했다. 또 경계선을 명확히 표시하고 배경은 단색으로 꼼꼼히 칠하라고 지시했다. 내 그림과 반대였다. 난 색을 많이 쓰고 싶었다. 시키는 대로 그린 그림을 걸어두면 내 그림이 눈에 띄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창의성 말살 교육이다!
이 시기쯤에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싶어져서 동네 미술 학원에 등록했는데, 시스템이 희한했다. 내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각종 대회에서 상을 탄 그림을 따라 그리는 식이었다. 혹시 이게 책에서 본 임화(臨畫)인가? 그렇다기엔 좀 미심쩍었지만 일단 내 스타일대로 바꿔서 그렸다. 선생님은 없는 그림을 그려 넣지 말고, 색도 맘대로 바꾸지 말라고 지적했으나 난 슬쩍 다른 색을 골랐다.
반추해보면 난 그림 자체보단 색을 쓰는 행위에 관심이 많았던 듯하다. 진작에 눈치챘어야 하는데! 대체 왜 이렇게 가르치는지 의문이 생겼던 학원은 운영을 중지당했다. 작은 방에서 선생님 동생이 글짓기를 가르쳤는데 그게 불법이란다. 졸지에 미술학원을 잃은 난 이왕이면 (따라 그리는 곳 말고) 제대로 배우는 곳을 가고 싶다고 했고, 부모님은 화실을 찾아줬다. 주먹구구식이던 학원과 달리 체계적인 과정을 안내했다. 난 상당히 어린 축이었는데 미술과가 있는 고등학교에 가려는 중3이 몇 명, 대부분은 고등학생 이상이었다. 알고 보니 입시 전문이었다!
첫 주는 연필로 선을 그었고, 다음엔 정육면체와 직육면체 등 각진 모양의 석고를 몇 장 그렸으며, 둥글둥글한 구도 그렸고, 화실 안의 다양한 물체를 그렸다. 계속 그리다 보니 난 중학생이 됐고, 내 이젤 근처엔 석고상이 놓였다. 아그리파, 아그리파, 아그리파! 도대체 아그리파는 얼굴에 각이 왜 그리 많은지! 하나를 끝내면 또 각도를 미세하게 틀어서 또 그리면서 스케치북 한 개를 아그리파로 채웠다. 새 스케치북을 펼쳐도 또 아그리파의 늪! 미술이 암기과목인가? 명암과 그림자를 다 외울 무렵 선생님은 좀 더 곡선적인 줄리앙을 가져왔다. 비너스나 아리아스 같은 여신상은 어느 세월에 그릴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중3쯤, 소묘보다는 차라리 집에서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게 재미있다는 판단하에 화실을 탈주했다. 화실 선생님은 방학이 되자마자 다시 오라고 전화하셨지만, 난 이미 마음이 뜬 뒤였다.
가끔 부모님은 이 이야기를 꺼내며 넌 소질도 끈기도 없었다고 책망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 정도면 꽤 성실한 편 아닌가 싶다. 특별히 미술 관련 고등학교에 가려던 것도 아닌데 친구들 다 노는 주말에도 서너 시간 석고상과 씨름했다니! 화실에서 거의 숙식을 해결하다시피 하는 입시생을 봤기에 내심 지구력 부족을 느끼긴 했다. 김밥을 우물거리면서도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담요를 두르고 반쯤 졸아가면서도 연필을 놓지 않는 그들에 비교하면 난 끈덕지지 않은 게 맞았지만, 평범한 기준으로 보면 꽤 오래 버텼다. 입시를 앞둔 탓에 예민하고 날선 분위기에서 말이다. 이만하면 불성실한 사람 중에서 가장 성실한 사람 정도는 되지 않을까?
어느새 난 하늘을 노란색으로 칠하고 바다를 보라색으로 칠하는 일을 그만뒀다. 햇빛이 쨍쨍한 하늘은 톡톡 튀는 레몬색이라고 설명하기가 성가셨다. 노을을 머금은 짙푸른 바다가 넘실거릴 때의 청보랏빛을 재현할 의욕도 사라졌다. 하늘은 옅은 파랑으로, 바다는 짙은 파랑으로 칠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엄마가 강조하던 그림이 나왔다. 평범한 듯 남들보단 조금 괜찮은 정도. 데생을 할 줄 아는 덕분에 고등학교 미술시간엔 A를 받았지만, 큰 개성이 없는 그림이 됐다.
다행인 건 지겨울 만큼 원 없이 그린 덕분에 미련이 전혀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꽤 잘 그렸다며 어중간한 과거에 취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지금은 심심할 때만 말랑말랑 단순한 캐릭터를 폰으로 그리는 정도인데, 색은 꽂히는대로 마음껏 칠한다. 역시 난 색상을 더 좋아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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